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2베드 1,16)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서 우리는 간단히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야말로 정신나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교묘한 신화에 속아 넘어간 어리석은 자들이라는 생각이고 이런 생각은 세상 안에서 꽤나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 안의 온갖 비과학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또 교회에서 이루어진 비상식적인 일들을 다루면서 온 교회가 정신나간 집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다른 하나는 진실성입니다. 비록 인간들의 오류가 곁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근본 가르침의 방향성이 진실하다는 것이고 그 진실성의 근본은 실제 사건을 목도한 이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신앙을 직면하는 이들은 이 선택 앞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하지요. 분명 예수님의 사랑의 가르침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사람들이 압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근본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다가설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그 근본 가르침을 넘어서는 것에 다가서야 할 때에 사람들은 주저하게 됩니다.
특히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능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신화처럼 느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가르침을 접할 때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혀 체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에 막연한 거부감에 사로잡히거나 별다른 중요성을 두지 않고 지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 사도들이 직접 목격한 일을 믿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목격에 대한 증언은 사도들이 직접 작성한 편지글로 우리에게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아니더라도 다른 내용들을 믿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텔레비전에서 보도하는 기사들을 대부분 의심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여러가지 기업들이 하는 광고를 신뢰하면서 그 물건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앞에 사도들의 증언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마다의 신뢰를 거기에 던지게 되는 것이지요.
신앙의 내용들을 믿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믿기 싫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의 믿는 것은 단순히 여러가지 사물 가운데에서 뭔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행보를 결심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신앙을 앞에 두고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에 대한 구체적인 나의 삶의 행보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앞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지요.
사도들은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것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그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떠할까요? 그 증언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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