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삭을 주워 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곤궁한 생활이지요. 하지만 머지 않아 자신이 찾던 대로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가 바로 보아즈입니다.
룻은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그녀의 덕행은 이스라엘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리하여 보아즈에게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룻은 보아즈의 아내가 되고 그로 인해서 장차 왕이 될 다윗의 선조가 됩니다.
우리는 이 룻의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하느님의 혈통에 대한 이해를 돕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방인이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품은 이에게 축복을 전하고 심지어 당신의 혈통 안으로 맞아 들이신다는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라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부심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가톨릭이 나름 한국 사회 안에서 힘 있는 종교라서 그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 뿌듯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가르치는 바 대로 우리 스스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우리가 단순히 가톨릭이라고 해서 남달리 보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인 경우가 많으니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서 드러내는 행실이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할 때에 사람들은 실망을 하고 우리를 천시합니다.
룻이 하느님의 자녀인 시어머니를 따르고 그분을 섬김으로써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축복을 얻게 된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따르는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에 합당한 생활을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단순히 외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분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가 굳게 신뢰하는 것으로부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낮추어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에게서 하느님의 축복을 입은 왕의 자손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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