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나 더위는 피할 수 있습니다. 때로 인생에 다가오는 시련도 지나고 보면 어느 샌가 과거의 일이 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들은 극복하고 나면 오히려 나에게 큰 힘의 밑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겪는 모든 일이 지금 당장 괴롭다고 무조건 피하고 볼 일은 아닙니다. 완전히 피할 수도 없는 데다가 때로는 그런 경험들이 도리어 득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은 다릅니다. 은밀한 곳에서 저질러지는 죄의 어두움, 내 양심을 아프게 하는 일들은 '영원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회개는 미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말한다고 무조건 '고해성사'를 떠올려서는 안됩니다. 성사의 환경은 허락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박해 시대의 사람들은 성사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서 비슷한 현실을 겪고 있습니다.
'진실한 회개'가 우리의 내면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질 때는 과감하게 성사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어둠'을 지닌 상태로 서 있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애써야 합니다. 세상의 어려움은 지나가지만, 영혼의 어두움은 내가 뉘우침을 발하기 전에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거꾸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속으로 은밀히 저질러진 어두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눈 앞에 있는 괴로움을 하루빨리 치워 버리려고 합니다. 남편에 대한 은근한 증오는 방치하면서 남편이 하는 일상의 실수는 사정없이 지적질을 해 대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이기심은 내버려두고 누군가 나에게 잊어버리고 돌려주지 않은 돈에는 흥분하는 사람이 됩니다. 낙타는 삼키고 벌레는 뱉어내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무엇이 더 시급한 일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치한 것의 결과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먼저 육신을 돌보고 영혼은 나중이라고 미뤄두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더 시급한 문제는 우리의 영혼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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