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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미디어와 자극을 찾는 세대



돈을 사랑하는 사회에서는 돈이 모여드는 곳으로 모든 행위가 집중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을 돈의 배후에 있는 세력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배우가 결국 좀 더 자극적인 요소를 원하는 스폰서들에 의해서 옷을 벗게 되는 일은 흔한 일이고, 그 밖에도 사람들의 본연의 가치를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돈의 유혹에 굴복하고 무너져 내리는 일은 쉽게 발견되는 부분이다.


무엇이 자극적일까?

하나의 예로, 유투브에서 키즈 채널 운영자와 19금 개그를 곧잘 하는 두 사람이 만나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는 영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순리에 맞고 평범한 것에는 자극받지 않는다. 순진한 것이 파괴되고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데에서 사람들은 흥분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코로나로 인해서 일상이 메말라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온라인 매체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자극적인' 요소들을 찾아 헤매게 된다.


가톨릭의 미디어 매체들은 어떠할까? 과연 온전히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지? 복음의 가치를 전하는 노력보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이 가중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질은 사라지고 사람들의 이목을 보다 빠르게 끌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꾸준함과 성실함이 사라지고 가톨릭의 본질과 전혀 무관한 요소들이 판을 치기 시작한다. 사제라는 이유로 신비감에 감추어져 있던 영역을 다방면으로 드러내면서 누구나 하는 평이한 일들을 영상에 쏟아놓는다. 얼마나 갈 것인가? 사람들은 곧 싫증을 느끼고 채널을 바꾸게 될 것이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중심 과제를 절대로 놓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전하려는 순수한 목적이 살아있는 이상은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심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사제복을 입은 채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을 벌리는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이미 존재하지만, 오늘날의 이 시대는 보다 현실적이고 조금은 더 구체적인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고민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바로 우리 교회 교도권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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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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