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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동방박사들이 맞닥뜨린 현실

동방박사들은 순진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한 자신들의 지성적 탐구로 별의 운행을 알아내게 되었고 그 별이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초기에는 누구나 순진한 마음입니다. 그저 성당에 가면 뭔가 좋은 것이 있으려니 생각하고 신앙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동방박사들은 헤로데 일당을 만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동방 박사들은 순진합니다. 반면 헤로데 일당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의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한 측은 경배를 하고 싶어하고 다른 한 측은 살인을 하고 싶어하고 거짓을 남발합니다. 그러나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서로 돕기까지 합니다. 이는 현재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의 현실적인 모습입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경배하는 이들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1도 없는 사람들도 함께 공존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참된 신앙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름 도움이 됩니다. 마치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더 무거운 역기가 근육을 더 키워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순진했던 이들은 악한 의도를 가진 이들과 마주하면서 내면의 신앙을 더욱 다져 나가고 키워 나갑니다. 결국 동방박사들은 아기를 만납니다. 그리고 기쁨 가운데 경배하고 자신들이 가진 가장 귀한 보물을 그 앞에 내어 바칩니다. 반면 악한 의도를 지닌 이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이 가지게 될 것은 분노와 원한, 증오와 슬픔 뿐입니다. 이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날 분명한 영적 현실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신비

처음부터 모든 것이 알려질 수는 없습니다. 마치 대학 수업을 유치원생에게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알아들을 만한 것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가고 심도를 깊게 합니다. 예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선택된 이들의 특권이었습니다. 선택된 민족, 하느님의 백성이 가지는 특권을 그들은 이해했습니다. 마치 복사서는 아이들이 사제 생활의 멋진 외적 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다음 단계를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머지 않아 수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구원은 자신들이 이루어낸 성과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의 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도 빼앗기고 유배를 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복사서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님이 된다는 것은 마냥 멋진 것이 아니라 삶에서 다가오는 여러가지 도전들에 적극적으로 응대할 때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학업에 있어서도 그렇고 교우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그러한 생활을 수년 간 거치고 통과해 내지 못하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도전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춰져 있던 신비가 드러납니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숨은 신비였습니다.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만의 선별적 특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제가 된 이들도 똑같이 깨달아야 하는 바입니다. 결국 하느님은 특정 사람을 선별해서 허울 좋은 특권을 주기 위해서 사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숨어 있던 신비가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사실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 뿐입니...

우리의 영혼이 빛으로 감지하는 것

빛이라는 개념은 성경 안에서 자주 쓰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각 대상에 따라서 빛이라는 주제는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태양빛을 압니다. 그 밝은 빛은 우리의 눈을 통해서 감각됩니다. 우리의 지성도 빛을 감각합니다.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때에 우리의 지성은 어두운 곳에 빛이 비치는 것처럼 밝아집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빛은 바로 영혼의 빛입니다. 영혼은 언제 '밝음'을 인지할까요? 정답부터 말하자면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은총을 선물받을 때에 영혼은 밝아집니다. 사실 사람들은 그 빛 안에 이미 살아오기 때문에 빛을 알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를 체험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책감'이라는 영혼의 어두움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원래 맑고 밝기 때문에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 아래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죄를 짓고 나면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바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영혼의 빛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즐거운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을 밝히는 빛으로 다가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탄을 그저 한 때의 소비 상품으로 이용하는 자들에게 성탄은 일시적인 쾌감을 선물할 뿐이지만, 성탄의 참된 의미를 아는 이들에게 성탄은 꾸준한 내면의 기쁨으로 선물되는 것입니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