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준주성범을 만나던 날을 기억합니다. 신학교에 처음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날이 마주하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이 너무나 달아서 늘 그 말씀에 취해 있었습니다. 신학교 1학년 때에는 팔공산의 한티 피정의 집에서 영성의 해를 보내고 있었는데 피정의 집 앞마당에 있는 잔디밭은 휘적 휘적 거닐면서 그 말씀을 묵상하던 기억이 납니다. 말씀이 달콤하다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맑고 순수한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은 꿀처럼 다가옵니다. 어쩌면 그때 받은 힘으로 지금껏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언뜻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는 것 같지만 그 모든 기쁨들은 사실 속임수입니다. 결국 빼앗겨 버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마지막 날에 모두 상실하게 될 기쁨입니다. 그래서 속아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이용하되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말씀은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마치 운동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 운동을 실제로 하려면 힘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실행한 운동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받은 하느님의 말씀은 꿀처럼 달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삶 안에 녹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라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세상이 끊임없이 공격해 들어오고 속이려고 드는 데도 그 말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에즈라 사제가 읽어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백성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고 참되어 어리석음을 깨우치며 당신의 규정은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은 밝으니 눈을 맑게 해 줍니다. 그래서 백성은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속이는 세상의 헛된 소식에 기뻐하는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실함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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