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나 던져줘서 넙죽 받아먹는 건 쉬운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배가 고플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 '생선보다 낚시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뭔가 상황을 주고 '이렇게 하세요.'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다 중요한 건,
그 가정한 상황이 누구에게나 다가오지 않으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나은 것인가를
본인 스스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강의를 하면서
이 구절은 이렇고 저 구절은 저렇다는 건
지식의 욕구를 채워주는 좋은 내용이다.
하지만 그걸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천시키는 것이야말로
성경강의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너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돈이 점령한 이 세상에서 너의 구원은 무엇이고 넌 그걸 어떻게 추구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메아리치게끔 하여야 한다.
사실,
이런 질문들에 사람들은 제각기 답변을 이미 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삶으로 대답해오고 있다.
굳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시키지 않아도,
돈 때문에 누군가를 증오하는 사람은 증오하고,
미워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이 용서하라 했기에 용서하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이미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모델은 늘 있으니,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람이다.
왕(삶)
이 삶을 자신이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모범을 통해 자신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그 모범의 권위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예언자(가르침)
약한 이의 힘을 북돋아 주고,
엇나간 이에게 경고를 주는 사람이다.
결국 이를 통해서
사람들의 감긴 눈을 열어주는 사람이다.
사제(신비)
예식들로 이러한 것들을 신비로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일상 안에서의 기도와 성사를 통해서 다가올 하늘나라를 미리 체험하게끔 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세례를 통해 받는
3가지 직분은 이렇게 완성된다.
우리는 그 직분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며,
각자의 삶 안에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