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
초등학교에 이제 겨우 들어갈 나이의 아이가 알아서 공부를 어찌어찌해서 나중에는 수학의 방정식들을 계산해 낼리가 만무합니다. 왜냐하면 전혀 배우는 데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는 읽을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그때 그때에 적합한 교육자,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확 바뀌어 성인이 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가능케하시는 하느님의 힘을 빌어 그렇게 선택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가능성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될 대로 되라면서 사는 건 '무책임함'일 뿐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장 첫 단계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주어지든 간에, 사람이라면 분명 보다 고차원적인 무언가의 고갈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 아무리 부유하고 날마다 오락거리가 있는 사람도 그렇고, 늘 시련에 사로잡힌 사람도 그렇고, 아무리 거룩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 단계 더 뛰어 올라야 한다는 내 영의 필요성을 어느 순간에는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영적지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순간에 가장 적합한 영적 지도자를 보내 주십니다. 그것은 어느 미사의 강론일 수도 있고, 신심활동일 수도 있고, 실제의 어느 영적지도자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안에서 우리가 마주치게 될 가장 훌륭한 영적 지도자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앞서 말한 그 모든 것 안에서 움직이는 '성령'의 활동이 존재하고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을 훗날 돌아볼 적에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도움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단축시킬 수 있는, 보다 나은 방법은, 실제의 '영적 지도자'를 찾는 방법입니다. '영적'으로 상대의 상황을 분별해주고, 다음의 단계를 적절히 제시해주는 좋은 영적 지도자는 더할나위없는 보물입니다. 사실 수많은 사제들에게 이런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신학생 시절 동안에는 적어도 명칭으로라도 '영적 지도 신부'를 한 명씩 가지고 있으면서 적어도 '고해성사'라도 꾸준히 보게 되지만, 사제가 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홀로 걸어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모쪼록 이런 필요를 느끼고 주변에서 적합한 영적 지도자를 한 명씩 지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그저 속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수많은 이들도 많습니다. 그가 사물을 분별해내는 방식에 집중해서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여지없이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고해'의 은총 안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고해사제'라도 지니고 있었으면 합니다. '성사' 안에서 사제직은 특별한 은총을 드러내며 '고해자'에게 자기도 의도하지 않은 영적인 길을 제시하곤 합니다.
영적인 여정을 함께 걸어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령'을 받은 모든 이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영적 아기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주의!!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교의나 교회 교도권을 거부하는 거짓 영적 지도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의 말은 달콤하지만 결국 우리를 엇나간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초등학교에 이제 겨우 들어갈 나이의 아이가 알아서 공부를 어찌어찌해서 나중에는 수학의 방정식들을 계산해 낼리가 만무합니다. 왜냐하면 전혀 배우는 데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는 읽을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그때 그때에 적합한 교육자,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확 바뀌어 성인이 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물론 모든 것을 가능케하시는 하느님의 힘을 빌어 그렇게 선택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가능성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될 대로 되라면서 사는 건 '무책임함'일 뿐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가장 첫 단계는,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주어지든 간에, 사람이라면 분명 보다 고차원적인 무언가의 고갈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제 아무리 부유하고 날마다 오락거리가 있는 사람도 그렇고, 늘 시련에 사로잡힌 사람도 그렇고, 아무리 거룩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일지라도, 한 단계 더 뛰어 올라야 한다는 내 영의 필요성을 어느 순간에는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이 '영적지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순간에 가장 적합한 영적 지도자를 보내 주십니다. 그것은 어느 미사의 강론일 수도 있고, 신심활동일 수도 있고, 실제의 어느 영적지도자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안에서 우리가 마주치게 될 가장 훌륭한 영적 지도자는 바로 '성령'이십니다. 앞서 말한 그 모든 것 안에서 움직이는 '성령'의 활동이 존재하고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을 훗날 돌아볼 적에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했던 도움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받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단축시킬 수 있는, 보다 나은 방법은, 실제의 '영적 지도자'를 찾는 방법입니다. '영적'으로 상대의 상황을 분별해주고, 다음의 단계를 적절히 제시해주는 좋은 영적 지도자는 더할나위없는 보물입니다. 사실 수많은 사제들에게 이런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신학생 시절 동안에는 적어도 명칭으로라도 '영적 지도 신부'를 한 명씩 가지고 있으면서 적어도 '고해성사'라도 꾸준히 보게 되지만, 사제가 되면서부터는 그야말로 홀로 걸어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모쪼록 이런 필요를 느끼고 주변에서 적합한 영적 지도자를 한 명씩 지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그저 속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수많은 이들도 많습니다. 그가 사물을 분별해내는 방식에 집중해서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여지없이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고해'의 은총 안에서 털어놓을 수 있는 '고해사제'라도 지니고 있었으면 합니다. '성사' 안에서 사제직은 특별한 은총을 드러내며 '고해자'에게 자기도 의도하지 않은 영적인 길을 제시하곤 합니다.
영적인 여정을 함께 걸어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성령'을 받은 모든 이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영적 아기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주의!!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교의나 교회 교도권을 거부하는 거짓 영적 지도자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의 말은 달콤하지만 결국 우리를 엇나간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