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영적인 차원)
우리가 사는 삶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여러가지 이면이 있지만
이 글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이면은 '영적인 차원'이다.
한 범인이 술집에 가서 술을 한 잔 마셨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한 것 뿐이다.
한 신자가 술집에 가서 술을 한 잔 마셨다.
여기서부터는 영적인 면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
술을 잘 절제해서 마셨는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마셨는지,
자신의 시름을 극복하기보다는 술로 잊어보고자 마신 건 아닌지,
몸에 해로울 정도로 마셔대진 않았는지,
사제가 술을 마시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여기에는 '표양'의 문제가 더욱 극심해진다.
기본 신자가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모범까지 작용을 한다.
때로는 술을 마시는 것 자체로 타인의 핀잔을 들을 때와 장소도 존재하기도 한다.
또 '술'이야기가 나올까 걱정이 된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이면에 숨겨진 영적인 영역이다.
이 영역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이 영역을 느끼는 감각을 섬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깨어있다'는 말의 본 의미이다.
뒤집어 이야기해서,
이런 '영적인 영역'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들은
좀 편안하게 두라.
예컨대 자녀가 자기 능력에 따라 좋은 성적을 들고 올 수도
또 아닐수도 있다.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자녀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는데
신앙인의 어머니가 자식의 점수가 욕심이 나서 자녀를 닥달하는
그 '탐욕'과 '집착'이라는 영적인 차원을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면
과히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