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뜬 장님
연중30주주일강론
많은 이들이 눈을 감은 채로 뜨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문제는 시작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눈 뜬 장님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갈망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명확하게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들은 영적인 장님들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이 자신의 눈멀음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 진 다음에야 비로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음식을 찾는 이는 없습니다. 배가 고파와야 비로소 음식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먼저 우리 안에 이 '원의'가 있어야 합니다. 눈이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 다음에는 '눈 뜨기'를 바래야 합니다. 영적인 사물을 분간하고 영적인 빛, 즉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지나가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치유받고자 하는 바램을 예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바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는 이런 나를 두고 나무랍니다. 아니면 내가 믿고 갈구하는 바를 가로막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쨌건 내가 가진 이 믿음은 '시련'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보다 더 순수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복음에서의 소경은 이 시련을 통과하고는 더욱 크게 부르짖습니다. 자신이 진정 간절히 원하는 바를 더욱 극대화해서 밝히 드러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적인 세상 안에서는 '시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기 일쑤이고, 원래의 삶, 그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영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애써 무시하던 과거의 삶에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지만 이 소경은 해 내었습니다. 시련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더욱 크게 부르짖으니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 예수님의 선택, 당신께서 도구로 쓰시겠다고 한 소경을 부르십니다. 이에 소경은 기쁜 나머지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펄쩍 뛰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앞에 두고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널 위해서 무엇을 하기를 바라느냐?" 소경으로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의 실체를 의심할 정도의 질문입니다. 눈이 먼 자신을 뻔히 바라보면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다니, 그토록 내가 찾았고 부르짖고 사람들의 비난도 무릎쓰고 겉옷마저 벗어던지도 나왔는데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소경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청합니다. '선생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결국 소경은 그토록 원하던 시야를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의 지침들이 가득한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의 수순을 거쳐 영적인 눈을 뜨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멘.
연중30주주일강론
많은 이들이 눈을 감은 채로 뜨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문제는 시작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눈 뜬 장님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며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갈망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명확하게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들은 영적인 장님들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일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이 자신의 눈멀음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 진 다음에야 비로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음식을 찾는 이는 없습니다. 배가 고파와야 비로소 음식 냄새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먼저 우리 안에 이 '원의'가 있어야 합니다. 눈이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 다음에는 '눈 뜨기'를 바래야 합니다. 영적인 사물을 분간하고 영적인 빛, 즉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거기에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지나가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면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치유받고자 하는 바램을 예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바를 드러내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사람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는 이런 나를 두고 나무랍니다. 아니면 내가 믿고 갈구하는 바를 가로막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쨌건 내가 가진 이 믿음은 '시련'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보다 더 순수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복음에서의 소경은 이 시련을 통과하고는 더욱 크게 부르짖습니다. 자신이 진정 간절히 원하는 바를 더욱 극대화해서 밝히 드러냅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적인 세상 안에서는 '시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기 일쑤이고, 원래의 삶, 그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영적인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애써 무시하던 과거의 삶에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지만 이 소경은 해 내었습니다. 시련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더욱 크게 부르짖으니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 예수님의 선택, 당신께서 도구로 쓰시겠다고 한 소경을 부르십니다. 이에 소경은 기쁜 나머지 자신의 전 재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펄쩍 뛰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소경을 앞에 두고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십니다. "내가 널 위해서 무엇을 하기를 바라느냐?" 소경으로서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의 실체를 의심할 정도의 질문입니다. 눈이 먼 자신을 뻔히 바라보면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다니, 그토록 내가 찾았고 부르짖고 사람들의 비난도 무릎쓰고 겉옷마저 벗어던지도 나왔는데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소경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청합니다. '선생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결국 소경은 그토록 원하던 시야를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우리의 영적 여정의 지침들이 가득한 너무나도 아름다운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의 수순을 거쳐 영적인 눈을 뜨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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