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그것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과거를 쉽게 잊는다.
우리가 어둠에 싸여 있을 때에는
지극히 작은 자비의 빛이라도 오기를 바라던 우리들은
어느새 용서를 체험하고는
자신이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서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로 이미
우리 스스로를 심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 스스로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안의 양 떼들은 안전하다.
우리가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것은 착한 목자의 모범이다.
착한목자는 우리 안에 머물러서 잃은 양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착한목자는 우리 밖으로 나가 양을 찾았다.
이 '우리'는 뭐고 '우리 밖'으로 나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많은 목자들이 양 우리 안에 앉아
양들의 젖을 짜 먹고 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면서
우리 밖으로 나간 양들을 비난하고만 있다.
풍랑이 몰아치는 배 안에 앉아,
그저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두려움에 떨며
돛대만 꼭 붙들고 있다.
착한목자처럼 걸어나가야 한다.
베드로처럼 걸어나가야 한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것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우리의 과거를 쉽게 잊는다.
우리가 어둠에 싸여 있을 때에는
지극히 작은 자비의 빛이라도 오기를 바라던 우리들은
어느새 용서를 체험하고는
자신이 스스로 '심판자'의 자리에 서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로 이미
우리 스스로를 심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 스스로의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안의 양 떼들은 안전하다.
우리가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것은 착한 목자의 모범이다.
착한목자는 우리 안에 머물러서 잃은 양을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다.
착한목자는 우리 밖으로 나가 양을 찾았다.
이 '우리'는 뭐고 '우리 밖'으로 나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많은 목자들이 양 우리 안에 앉아
양들의 젖을 짜 먹고 털을 깎아 옷을 해 입으면서
우리 밖으로 나간 양들을 비난하고만 있다.
풍랑이 몰아치는 배 안에 앉아,
그저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두려움에 떨며
돛대만 꼭 붙들고 있다.
착한목자처럼 걸어나가야 한다.
베드로처럼 걸어나가야 한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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