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사실 [신앙의 해]가 아닌 적은 없었다.
이런 해가 반포된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신경을 덜 써 왔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왜 그랬을까?
우리의 신앙은 어디 가버린걸까?
우리의 신앙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그러자면 먼저 신앙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소위 '믿는자들'이기에 신앙을 잘 이해한다면서 그 단어를 쓰지만
실상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않다.
신앙한다는 것, 믿는다는 것, 신뢰를 두는 것,
그건 뭔가?
내가 돈 천원을 들고 있는데
아빠가 집에 가서 만원 줄 테니까 그 돈 길에서 구걸하는 걸인에게 주란다.
아빠를 믿으면 줄거고 아니면 안줄거다.
이게 신앙이다.
하지만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의 자리 대신에 '돈(재물)'을 신앙한다.
돈은 우리의 생활수준을 보장하고, 의료혜택을 보장하고, 현세 생명을 보장한다.
그게 돈이다.
그래서 그토록 벌려고 하고 은행에 쌓아두고 보험과 적금을 들려고 한다.
이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신자들이 '영생'을 잃어간다고 봐도 된다.
영원한 것, 영원한 가치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면서
현세라도 건지려고 그토록 난리인 것이다.
현세를 걱정하는 사람은 '섣부른' 시도를 하지 못한다.
이런 저런 겁이 많다.
이런 일을 하다가 내치이면 어떡하나,
저런 말을 하다가 가지고 있는 걸 잃으면 어떡하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 근본 바탕에는 '죽음'의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면서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우리가 가진 신앙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안전'하고 싶은데
우리는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의 이름을 선포해야 한다.
그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신앙의 해가 시작되었다.
주님을 믿으라고 목이 터져라 부르짖어야겠다.
사람들이 날더러 미쳤다고 할 때까지. ㅎㅎㅎ
원수가 저를 모욕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참았을 것입니다. 저를 미워하는 자가 제 위에서 거드름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제가 그를 피해 숨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 내 동배 내 벗이며 내 동무인 너. 정답게 어울리던 우리 하느님의 집에서 떠들썩한 군중 속을 함께 거닐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