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의 신음과 악한 사람의 악의는 올바로 구분되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의 신음은 돌보아져야 하지만 악한 사람의 악의는 꾸짖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프던 사람이 악해지기도 하고 악한 사람이 뉘우치고 아픔을 호소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혼란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종로에서 뺨맞은 사람이 한강에서 화풀이 하기는 쉽습니다. 한강은 한적하고 고성을 질러도 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로에서 그와 같은 일을 하다가는 당장 신고가 들어가고 심할 때는 경찰도 들이닥칠 것입니다.
완벽한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하느님은 그 모든 것 안에서 의인들을 당신의 길로 이끄십니다.
사람들은 약함과 유연함을 오인하곤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유연함, 즉 친절과 온유와 자비를 '약함'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의인은 오직 하나만 분별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강해 보임과 약해 보임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다면 최고의 강도를 지닌 용기를 또한 가장 큰 자비가 필요할 때에는 언제라도 유연해질 수 있는 것이 하느님의 무한한 전능한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비둘기처럼 순박하되 뱀처럼 영리하기를 명하시기도 했고, 또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중한 것을 물어뜯고 공격해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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