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과학문명은 사춘기에 접어든 반항기 가득한 철없는 동생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이제 겨우 차를 모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아버지 열쇠를 훔쳐서 차를 몰고 나가려는 것과 같지요. 차를 몰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펑크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사고가 났을 때 보험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사소한 기계 결함이 있을 때 어떻게 조치할 수 있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그저 차를 몰면서 자신이 위대한 존재라도 되는 듯한 힘을 순간 느끼는 것 뿐이지요. 반면 성숙한 형은 여전히 아버지만큼의 지식과 능력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아직은 많이 모르고 있으며 나아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계시는 아버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도 동생과 같은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겸허하게 대응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영역에 대해서 둔감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알아낸 과학 기술이 마치 모든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이라도 해 줄 듯이 생각하고 자만하며 실제로는 많은 것을 망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한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영적으로는 미숙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겸손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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