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24시간 '선이냐 악이냐'를 분별하고 산다면 굉장히 피곤할 겁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시간을 딱히 판단을 사용하지 않고 흐름에 맡기며 살아가지요.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는 식입니다. 심지어는 일조차 '흐름'에 따라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근해야 하니 출근을 하고 퇴근해야 하니 퇴근을 하는 거지요.
하지만 이런 일상 가운데에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어떤 경우에는 조금 중대하게 또 여유와 더불어서 혹은 시급하게 결정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바쁜 가운데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짜증스럽게 응대할지 아니면 부드럽게 응대할 지, 배우자가 건네오는 중요한 결정에 나의 사욕에 따라 결정할 지 아니면 올바른 조언을 해줘야 할 지와 같은 문제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이 분별의 순간이며 올바른 판단의 순간인 것입니다.
이런 작은 순간들, 이런 하찮아 보이는 결정들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형성해' 갑니다. 우리가 하는 '올바른' 선택이 쌓이면 우리는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우리가 '무심히' 선택을 하면 우리는 '무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쁜' 선택을 하면 결국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를 들어 학생 시절에 담배에 손을 댈지 말지, 그리고 그렇게 쌓인 습관을 끊을지 말지, 시간이 더 흘러 건강을 위해서라도 멈출지 말지... 이런 수많은 선택 속에서 '소홀한' 선택을 해 온 사람은 결국 '폐질환'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결국 두 사람 사이가 아름답게 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서먹한 사이가 될 수도, 심지어는 적대시하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깨어 있으라'는 초대는 바로 이런 순간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마찬가지이겠지요. 일상 안에서 꾸준히 하느님의 뜻을 배워 온 사람의 선택과 하느님을 적극적으로 거부해 온 이가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선택은 차원이 달라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모두 준비해 온 과정인 셈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수가 핸들을 조금만 틀어도 차는 가드레일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사도 비슷하니 우리는 이 분별의 핸들을 잘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갈림길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멍하니 있다가는 빠져나가야 할 길에서 빠지지 못하고 엉뚱한 고속도로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