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거룩한 성인 하나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초대하고 싶으신 거다. 그리고 그 기쁨을 나누고자 하신다. 하느님의 사랑은 잃어버린 이들에게 더욱 집중되어 있으며 그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계신다. 우리가 성인이라 부르는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들어높여진 이들인 셈이다. 그들의 원래 자리는 우리와 똑같은 자리이다. 그들은 그 들어높여짐으로 인해서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냥 평범한 종이는 이런 저런 용도로 쓰이다가 수명을 다하면 그만이지만 포스터로 선별되는 종이는 더 오랜 시간 햇볕에 노출되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드러나 자신의 특별한 사명을 다 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영성생활 중에 흔히 빠지게 되는 오류 가운데 하나는 이런 거룩함에로의 추구를 한답시고 자신의 달콤한 경험을 찾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과는 영 딴판이다. 우리가 진정 거룩함으로 다가가려면 거룩하지 않은 이들에게 다가가 거룩함을 나누어야 한다. 거룩한 이들 끼리의 고상한 말잔치는 다른 무언가를 양산하지 않는다. 정말 거룩해지고자 하는 이는, 가난한 이들 소외받은 이들 외로운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가톨릭의 신앙은 '파견'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미사를 마치고 나면 그 충만한 힘으로 세상으로 나아가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우리가 가진 신앙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부활의 진정한 기쁨은 죽은 이가 살았을 때에 누리는 기쁨이다. 이미 살아있는 이가 다시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될 뿐더러 그런 기쁨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신자들이 부활 가운데 공허를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부활을 죽음 가운데에서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부활 밤에 모여 밤새도록 떠들며 기쁨을 나누어 보았자 이튿날이면 다시 공허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진정 부활을 만끽하고 싶으면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로 돌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