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4주 목요일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의심해본 적이 없고 그분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배반'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분주히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하느님과 여전히 친한 이들이 하느님과의 친교와 그분에 대한 배반의 역사, 그리고 나아가 그분의 구원 계획을 책으로 엮어 내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이 책은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습니다.
이 '성경'의 근본 목적은 사람들이 다시 하느님과의 친교에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웃기는 건 이렇게 한 번 책으로 엮어진 하느님과 인간의 역사는 다시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 읽혀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작업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는 절대로 손도 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일부 사람들은 그 책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낱말 하나하나에서 그 모든 뜻을 풀어내어 연구한 뒤에는 '논문'을 제출하고는 뿌듯해 하였습니다.
닫혀 있는 깡통을 따라고 깡통따개를 사다 줬더니 '깡통따개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논문을 쓰고 여전히 깡통을 열지 못하고 있는 헛똑똑이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진짜 삶을 잃어버린 채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제라든지, 신학자라든지, 수도자나 평신도와 같은 겉으로 보이는 껍데기는 허상일 따름입니다. 각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노력을 해 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분에 대해서 연구한답시고 그분을 더 멀리 떨어뜨려놓는 것만 같습니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중심 줄기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자 무식 까막눈 할머니라 설령 성경을 눈 앞에 두어도 읽지는 못하지만,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대로 하느님은 사랑이고 용서하는 사람이고 가난한 이와 억압된 이를 풀어준다는 것을 배워 알게된 분이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거리를 나누어 줄 줄 안다면 이 할머니는 이미 성경을 읽은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성령의 방향을 읽고 그 방향대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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