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움직이는 이유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욕구는 단 한번도 '충만히' 채워져본 적이 없다.
언제나 뭔가 모자란 느낌이다.
사탄은 이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유혹해왔다.
처음에는 책상 하나를 가지기를 원했는데,
책상이 들어서고 나니 책상 위의 램프가 부족한 느낌이다.
램프를 사면 연필꽂이가 갖고 싶고,
그 다음엔 이쁜 연필들이 갖고 싶은 식이다.
우리가 이런 일련의 욕구들의 행진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사물들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가기 시작한다.
우리가 입으로는 실제의 밥을 집어넣고 있으면서
마음은 더 새로운 맛과 향을 상상하며 지금의 밥에 실망하는 식이다.
하느님은 실제를 만드셨고, 실제를 살아가게 하신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순간' 만이 있을 뿐이고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우리는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바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현대의 세상에서는 '비워냄'으로 더 잘 이루어진다.
우리는 지나치게 욕구가 많다.
세상의 식량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탐욕스런 이의 욕구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나아가서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욕구를 지녀야 한다.
거룩함에로의 욕구, 보다 참된 삶에로의 욕구,
우리가 익히 아는 교리적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부활에로의 욕구이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이런 류의 욕구에 새로이 눈 뜬 사람으로서
때로는 현세에서 정당하게 욕구할 만한 것조차도 양보하는 이들이다.
내가 마땅히 누릴 나의 노력의 결과물을
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양보하는 사람들,
내가 마땅히 누릴 정서적 안정감을
더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들,
이런 이들이 죄인들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욕구하는가?
그 욕구는 정당한가?
그 정당한 욕구 마저도 영원에로의 욕구를 위해 희생할 수 있겠는가?
뭔가 하고 싶어질 때에 위의 질문으로 그 욕구를 곱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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