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자선가가 아니다. 내 돈이 아닌 돈을 움켜쥐고는 마치 주인인 양 행세하며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사제는 영혼의 목자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영혼들의 유익을 생각하며 해야 한다. 돈을 나눠 줄 때도 그래야 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할 때도 그래야 한다. 영혼에 유익하다면 최악의 일도 해야 하고, 영혼에 유익하지 않다면 가장 성스러워 보이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제의 직분에 관리자의 직분이 있는 것도 그것이 영혼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지 그저 그 자체의 직분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중소기업 사장이나 하는 게 낫다.(보통은 그럴 능력도 되지 않는다.) 양들을 먹일 영적 양식이 없는 상황에 본당 재정이 늘고 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일 것인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부족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자. 사제는 영혼의 추수꾼이다. 신자들과 어울려 한 잔 하는 것이 영혼에 유익하다면 그리 하라. 그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여 자신의 영혼을 망쳐 결국 주변의 양들의 영혼도 망치게 된다면 이제는 그만둬야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은 무조건 좋아 보이지만 기도만 하고 다른 활동을 무시한다면 그것 역시도 그만둬야 한다.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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