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둠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류와 죄와 잘못으로 점철된 역사와 그것에 가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그 이면에 빛과 그 자녀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이며 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참고 견뎌야 한다고 하지요. 무엇이 바람직한 일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님이 악에 맞서서 어떻게 저항해 왔는지 혹은 그들을 품어 왔는지 살펴본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명백한 죄가 있어도 그것을 심판하기보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했고, 한 사람에게서 99가지의 오류가 발견되어도 단 한 가지의 희망 때문에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판단을 조심할 것을 거듭 당부했지요. 우리가 남에게 던지는 시선으로 먼저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를 요구했습니다. 누군가 뇌물을 받는 게 싫다면 나는 행여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은지, 누군가 탐욕에 빠져드는 것을 두고 비난하고 싶다면 나는 그런 탐욕스런 마음이 있지 않은지 먼저 살펴보도록 요구하셨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잃은 양을 포기하고 99마리를 살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99마리를 우리 안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가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그런 살리려는 사랑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없는 당신을 죽이는 이들에게 생명을 내어주신 분이었지요.
때로 성격이 급한 이들이 다가와 물을 때가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뭔가 하지 않느냐고 말이지요. 왜 하지 않고 있겠습니까? 선한 이들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성실한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꾸준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일이라는 것이 성격이 급한 이들에게는 전혀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일한다는 것을 외적인 지표로 만들어 버리면 선한 이들의 일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서서 데모라도 해야지 ‘기도’가 무슨 말이냐며 반박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왜 기도를 무시합니까? 마음이 맑은 이의 기도는 언제나 하늘에 가 닿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지성을 훨씬 뛰어넘는 당신의 지혜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가르치는 일, 삶으로써 복음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 어떤 정책을 수정하고 법 규정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법이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결국 잠시의 빈틈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엇나갈 것입니다. 신호등이 있고 감시 카메라가 있어도 사람들은 신호를 어기고 과속을 하지요. 왜냐하면 그 마음 근본에 저마다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변화는 10년이 걸릴 수도, 평생이 걸릴 수도, 혹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천천히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동참하는 이들, 즉 사람들이 내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면서 일하는 이들의 활동은 거의 눈에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 6,3-4)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하고 나의 것으로 충분히 익히는 것이 신앙인의 근본적인 삶의 도리일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나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사제는 사제의 삶의 터전에서 그것을 드러내어야 하고, 수도자는 수도자의 영역 안에서, 의사는 의사대로 학교 선생님은 학교에서 그것을 드러내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믿으며 서로를 돕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서로 갈라지고 나뉘어져 있지요. 그들이 맺는 열매로 그들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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