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이사 11,2)
지혜(sabiduría), 슬기(inteligencia), 경륜(prudencia: 신중, 주의, 조심, 절제), 용맹(valentía), 지식(conocer a Yavé), 경외(respetarlo)
주님의 영이 머무르는 이는 자신이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알기에 그의 길은 힘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는 스스로 가는 길을 통해서 더 많이 배워 알게 되고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어느 대상에 집중하면 그에 대해서 더 많이 배워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가진 지식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거나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쓰지 않고 신중하고 조심해서 쓰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표현할 때에 우리는 많은 경우에 ‘피상적인 지식의 양’으로 그것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시험 문제의 답을 많이 알면 그는 세상 안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지식을 가진 이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이기적인 목적’으로만 쓰려 한다면 그는 사실 전혀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의 앎은 보다 전체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른 길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통상적인 사람들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영리하거나 지식은 많지만 지혜롭지는 못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안다는 것, 즉 지혜롭다는 것은 총괄적인 인지를 의미합니다. 하나의 가치에만 집중하지 않고 대상의 총괄적인 가치를 가늠하고 신중하게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누군가가 뜬금없이 나에게 값어치 있는 무언가를 선물하겠다고 나설 때에 단순히 그 물건이 값비싸기 때문에 받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선사하는 그의 의도를 올바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혜로움은 단순히 ‘학적 배움’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즉 글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참된 지혜는 오직 하느님의 영에서부터 오는 것이고 하느님의 영은 그분에게 가장 마음을 활짝 여는 이, 사랑을 실천하는 이, 즉 하느님을 실천적으로 아는 이를 통해서 내려오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서적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 그는 절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식의 열매를 훔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더러운 손 때문에 그들이 가져간 지식의 열매에서 아무런 양분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반대로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은 하느님의 지식을 통해서 성장하고 자라나 빛의 자녀로 거듭날 것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루카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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