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람을 살립니다. 질타와 비난이 누군가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충고는 필요하지만 사랑이 제외된 충고는 날이 무딘 수술도구처럼 사람을 해칠 뿐입니다. 섬세하게 혈관을 자르고 봉합해야 할 수술 자리에 드릴과 도끼를 들고 들어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사랑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알았더라면 잊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을 추구할 것이며 그것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따라가기는 커녕 도리어 멀어지고 맙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박혔는가? 이 사실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예수님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했고 자신에 반대되는 이들에게 정당한 세상법에 따라서 심판을 해야 했고, 혹 예수님이 다른 힘있는 군대를 끌어올 수 있으면 그것이라도 끌어와서 싸워 이겼어야 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리석게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성경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1코린 1,18)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1코린 1,23)
사람들은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며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가면서 스스로 가장 의로운 신앙인이라고 착각합니다. 때가 이를 것이고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즉 십자가의 사랑을 전혀 배우지 못한 채로 그 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치 훈련을 하나도 하지 않은 이가 마라톤에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될 것입니다. 훈련을 단단히 한 몇몇 되지 않는 사람들은 기쁨에 설레이는 반면 전혀 훈련이 되지 않은 이들, 그저 텔레비전 모니터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스스로 마라톤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그때에 실제의 마라톤을 체험하면서 까무러치게 될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