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10)
참으로 속상한 표현입니다. 특히나 거래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지요. 우리는 투자한 만큼 얻어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원을 주면 그에 합당한 것을 받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지요. 헌데 신앙생활을 한답시고 평생을 고생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 아니, 얻기는 커녕 오히려 주인 앞에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면 이 얼마나 속상한 일이겠습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속상하게 여기는 이유는 ‘거래’하기 때문입니다. 거래하는 사람들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마땅한 것이지요. 하지만 거래하지 않는 이들,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사랑에 빠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상대를 바라보게 되고 상대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지요. 오직 상대가 원하는 것을 더 이루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과의 사랑에만 빠져도 그런데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이는 어떠할까요?
사랑은 그 사랑을 바탕으로 결과물을 얻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체로 기쁜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이는 모든 것이 즐거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심지어 가장 고된 십자가 마저도 즐거움이 되는 것이지요.
위 성경 구절의 고백은 바로 그러한 의미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하느님과 사랑에 빠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을 대기업 사장 같이 느끼고 우리가 거기에서 떡고물을 얻어내야 하는 존재로 느끼기 때문에 위 구절을 접하면서 ‘거부감’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덧붙여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 다만 그 보상이라는 것이 지금 이 지상에서 눈에 드러나는 형태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욱 고된 일이 다가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부활의 희망’이 있지요. 그리고 이 희망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은 그 누구도 함부로 가져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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