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루카 23,37)
“네가 왕이더냐? 그렇게나 강한 왕이더냐? 헌데 지금 이 꼴이 무엇이냐? 발가벗겨지고 매맞아 십자가에 무력하게 달려 있는 꼬락서니가 아주 보기 좋구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유명했더냐? 기적을 행하는 사람? 구원을 이루는 사람? 그러면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서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어서 이 나라를 구원해 보아라. 아니, 무엇보다도 너 자신의 목숨부터 살려보아라.”
모르긴 해도 십자가 주변에 모여든 이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조롱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권력을 두려워하는 이들이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기에 마음대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권능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도대체 왜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었습니다.
힘을 가지고 있어야 세상을 평정한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상대를 내리누를 수 있는 무기와 근육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지식과 명예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기를 씁니다. 세상 안에서 아주 약간의 권력이라도 쥐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한 것들이 자신을 드높게 만들어주고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입니다.
심지어 성당 안에도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겸손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자신의 위신을 끝까지 지키려는 이들, 자존심이 깎이는 것을 죽는 것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었던 이유는 제자들의 발을 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왕좌에 오르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왕관을 쓰지 않으시고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그분은 왕홀을 쥐신 게 아니라 차가운 쇠못을 양 손과 양 발에 지니셨습니다. 그분은 온갖 명예와 권능을 누리시기보다는 온갖 세상의 수치와 모욕을 한 몸에 받으시고 죄인들 가운데에서 죄인처럼 다루어 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지금의 사람들은 성지에는 가고 싶어하고 행여 예수님께서 스쳐 지나가셨다는 것을 거룩하게 여기며 손을 대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눠 지겠다는 사람은 좀처럼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어내신 영광은 탐을 내지만 그분의 십자가 앞에서는 도망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 왕국의 백성이 될 자격을 스스로 내던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왕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데 그분의 백성인 우리가 어찌 그 십자가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느님을 벗어나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는 그분의 왕권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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