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돈 몇 푼 쥐어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충분한 목적이 있다면 어둠에 빠진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선에 대한 감각을 되찾고 선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은 더이상 죄, 즉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에게 맞서는 죄를 짓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오류’가 하나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으로서 오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류들은 오히려 역작용을 해서 하느님께로 가까이 이끌어주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스스로를 분별하는 이유는 딱히 거짓말을 심각하게 한 것도 아니요 신앙생활의 의무를 성실히 지키며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법을 어기면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과 악에 대한 기준점은 그러한 바탕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점은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보느냐 아니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무리 ‘안전지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도, 즉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고 판공을 빠뜨린 적이 없으며 교무금도 꼬박꼬박 내고 교적 정리가 확실히 되어 있다고 해도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결국 그는 어긋난 방향으로 서 있는 이들이 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성경의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그를 죽이려고 모함을 하곤 했지요.
사실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들, 곧 진정으로 선한 이들은 오히려 자신 안에서 너무나도 큰 부족함을 늘 체험하고 늘 하느님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으며 묵묵히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 내곤 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종교 단체 안에는 선에 대한 감각이 없는 자칭 선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활동을 만들어내고 하지만 실제적인 ‘선에 도움이 되는 활동’은 참으로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일년 동안 수많은 행사를 계획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정으로 하느님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향성을 찾아보는 것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입니다. 그러는 동안 하느님에게 사로잡힌 한 영혼은 다른 이들이 해 내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하곤 합니다. 즉, 영혼들을 하느님 앞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지요.
어둠의 영은 우리를 사로잡아 스스로를 드높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다가서느냐 마느냐 마저도 자기 스스로 결정하게 되어 버렸지요. 바로 여기에 크나큰 오류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불러주셨지 우리가 하느님을 고르고 고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약한 신앙을 지닌 이들의 특징은 자신의 구미에 따라서 여러가지 것들을 취사선택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들이 하느님인 셈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