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 9,36)
양들이 시달리고 기가 꺾이는 이유는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있다면 목자의 볼호를 받아 늑대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고, 또 목자의 인도를 통해서 좋은 풀밭을 찾아서 실컷 배를 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자가 없기 때문에 늘 위협에 시달려야 하고 또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과연 목자가 없는 것이 목자 탓이겠습니까? 목자는 얼마든지 양들에게 원하는 것을 내어줄 것입니다. 목자의 부족은 목자의 탓이 아니라 양들의 탓입니다. 즉, 양들에게 목자를 전해 주어야 할 양들의 탓이며, 그러한 양들이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사명을 지닌 다른 모든 양들의 탓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 37-38)
양들이 일꾼을 청하기만 하면 보내주실 주인님이십니다. 하지만 그 청을 드리는 양들이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일꾼도 힘을 빼버리는 양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일을 하러 온 일꾼들을 진탕 술에 취하게 하고 그 고귀한 사명에서 정신을 팔게 해서 자신들이 먹는 해로운 독초에 맛을 들이게 하는 양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양들에게 목자를 전해 주겠다는 고귀한 사명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 그들은 그렇게 독초에 물들어갑니다. 그리고 양들을 돌보는 이들이 아니라 양들의 털을 깎아 옷을 해 입고 양의 젖을 짜서 마시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 양들은 지치게 되고 더욱 시달리며 기가 꺾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시작합니다. 즉,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일꾼을 보내 달라고 말이지요. 우리가 그러한 순수한 청을 드리기 시작할 때에 그 기도는 하느님에게 가 닿게 되고,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시작하십니다. 바로 그 기도를 드리는 이들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러면 진정한 일꾼이 생겨나게 됩니다. 단순히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은 다 익은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고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영혼을 거두어 들여 하느님에게 데려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꾼들은 영혼들을 거두어 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하느님에게 데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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