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차이루는 노란색이다."
누군가가 이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말을 외웠다고 한다면 그는 이 말을 '이해'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한 암기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 뜻은 여전히 가리워져 있습니다. '노란색'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문장 안에 있는 무언가가 노란색이라는 것까지는 이해하겠지만 '아차차이루'가 도대체 뭔지 알 도리는 전혀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공부도 비슷합니다. 누군가 성경을 읽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구절을 반복해 적고 외우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그 성경이 진정으로 '의도하는 바'가 그에게 온전히 흡수된 것일까요? 그렇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는 성경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실천'하기 전까지는 성경을 올바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정보를 담은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의도'하는 바가 있고 우리가 그것에 가 닿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있는 책입니다. 물론 성경을 가까이 두고 열심히 읽고 가능하다면 써보기도 하면 좋겠지만 그러한 것을 넘어서서 성경이 무엇을 '의도'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충분히 실천하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성경이 의도하는 바를 충실히 살고 있다면 설령 성경의 세부적인 내용을 모른다 할지라도 오히려 더 성경을 잘 받아들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이라면 주님의 계명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고 모든 율법서가 의도하는 것을 잘 이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율법의 몇 항 몇 절에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몰라서 율법의 근본 정신을 침해하고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정작 율법의 본질적 가르침은 거부하고 있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성경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지를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기 위해서 그분의 말씀과 행적, 그분에 대한 예언들을 성경에서 배워 익히는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