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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중독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담배를 끊는 것이 고통입니다. 담배를 태우는 것은 그에게는 오히려 기쁨입니다. 그래서 그는 담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일 담배를 물고 태우는 순간마다 자신에게 극도의 고통이 온다면 그걸 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은 나쁨에 중독됩니다. 사람은 미워하는 게 싫은데 미워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게 더 고통스러워서' 그 차선책으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움을 지속하다보면 심지어 거기에서 쾌감을 얻기도 합니다. 누군가 자신이 하는 증오에 보탬이 되는 말을 해 주거나 동의해 주면 영적으로 쾌감을 얻는 것이지요.


우리는 사람이 지옥에 간다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옥이라는 곳이 과연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에게 어떤 느낌일까요? 간단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고통스러워서 지옥을 선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진리, 선, 사랑, 온유, 자비와 같은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됩니다.


현대 사회는 '분노'를 너무나 쉽게 조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노에 쉽게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일들에 올바른 식별력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조심성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내적인 악습이 시작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왔습니다. 헌데 현대의 여러가지 소식들 안에는 알게 모르게 '분노'라는 양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같이 분노하기를 바라고 적으로 만들어 놓은 상대를 증오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는 틀로 교묘하게 포장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약점으로 인해서 '올바르게 분노'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그분의 외아들 예수님만이 의로운 분노를 표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로운 분노가 아니라 흔히 '격분'이라는 감정적 분노에 빠져 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죄악의 씨앗이 되고 그 격분 상태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수많은 오류를 양산하게 됩니다.


영혼이 중독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허영, 탐욕, 이기심, 교만, 분노, 슬픔, 좌절과 같은 것들에 중독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영혼을 언제나 맑은 물가에 두시기 바랍니다. 깨끗한 샘물로 언제나 자신의 내면을 씻어내는 사람은 어두움이 파고들 여지가 없게 됩니다. 언제나 말씀 가까이 머무르면서 생명의 샘을 마시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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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랑 목사님은 뭐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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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봉헌

미사를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말하자면 사무실에 가서 해당하는 비용을 내고 기도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올리는 행위를 ‘미사 봉헌’이라고 말합니다. 헌데 우리는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을까요? 미사를 봉헌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연옥 영혼들을 위한 효과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망자를 기억하면서 그를 위해서 드리는 미사는 그 영혼에게 효과가 미칩니다. 물론 무슨 효과가 얼마나 미칠지 우리는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인해서 그 영혼은 자비를 입게 되고 자신이 채워야 할 수난의 시간을 메꿀 수 있습니다. 이는 수많은 성인들의 실제적인 증언으로 우리가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드리는 미사도 그 효과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 때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정성은 받아들여지지만 그 은총의 효과는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병자가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지만 그의 건강의 회복은 오직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까지 아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들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사를 드리는 우리의 정성이 중요한 것이지요. 돈을 지불하는 것이 우리의 정성의 일부분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지닌 돈은 결국 우리의 정성을 모아서 벌어들인 돈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물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봉헌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더욱 소중한 정성입니다. 미사에 참례해서 진심으로 그 미사의 말씀을 듣고 성찬의 전례에 온전히 참례하게 된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미사의 은총을 더욱 배가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그런 미사 참례를 통해서 드리는 봉헌의 행위로 우리의 삶 자체는 변화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은총의 결과물은 바로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미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