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함의 선택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미숙한 이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점검을 바르게 하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의 사탕을 먹어야 적당한지 어느 정도의 힘든 상황을 내가 견딜 수 있는지 아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작정 사탕 그릇에 있는 사탕을 다 주워먹어 버리기도 하고, 또 높은 나무에서 무모하게 떨어지다가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은 언제 마무리 되어야 할까요?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힘들 때는 그만 멈추어 달라고 하고 좋을 때는 이 순간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의 주도권은 하느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아십니다.
나아가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의 개인적 이득과 연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섭리 안에서 살아가고 우리의 섭리는 타인의 구원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신앙을 가진 부모님은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생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녀들에게 '사랑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부모에게 고난의 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수많은 성인들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 때문에 지상에서 이미 마치고 싶은 삶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천사는 먹으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은 음식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천사가 주려는 빵은 '의지'의 빵입니다. 그리고 아직 할 일이 남았음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의지의 음식, 즉 은총은 그를 상상하지 못할 일을 하게 도와줍니다. 엘리야는 하룻길을 걸어 광야에서 죽을 것 같았는데 천사가 주는 빵을 먹고는 사십 일을 걸어갑니다.
물론 사십이라는 숫자는 언제나 정화의 시간, 참회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삶을 살면서 때로 많은 경우에 '삶'을 즉, 선을 향한 의지를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세상이 너무나 악하고 영리해서 그들의 꾸준한 공격에 의지가 무너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에게 은총의 양식을 먹이시고 우리는 그 힘으로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하느님의 산에, 즉 구원의 영역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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