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악을 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악은 반대로 선을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선과 악이 만나는 곳에는 상호 간에 부정적인 감정이 맴돌게 됩니다.
뇌물을 주려는 사람은 청렴하려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뇌물을 주고 서로 뒤를 봐줘야 일이 수월하게 처리되는데 이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집니다. 하지만 '악'은 뇌물을 주려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기분을 나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나쁜 게 아닙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올바로 식별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과한 욕심을 부려서 몸에도 좋지 않은 음식을 먹겠다고 떼를 쓰고 엄마는 단호하게 그것을 말리고 있는데 아이는 엄마에게 '나쁘다'고 악을 씁니다. 자신이 욕구하는 것을 못하게 가로막는 엄마가 야속하고 나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엄마가 나쁜 게 아닙니다. 아이의 과한 욕심이 그릇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잡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식별이 없으면 엄마가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습니다. 하느님은 선이고 우리를 빛으로 이끄시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은 괴롭게 느껴집니다. 또한 그런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둠에 있는 이들을 빛으로 이끄는 과정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사람들은 거부할 것이고 반대할 것이고 심지어는 비난하고 험담하고 없는 죄까지 만들어 덮어 씌울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자의 입에 하느님의 말씀은 달콤합니다. 예언자는 진리와 선을 받아들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받아먹는 말씀은 너무나도 달디 달아 마치 꿀처럼 입에 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말씀을 먹여 주시는 이유는 가서 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가 가서 전할 때에 '비탄, 탄식, 한숨'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작은 이들'은 '자신을 낮추는 이'입니다. 1독서의 말씀의 '반항하는 이들'에 정반대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에게 순명하고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만 반항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용기있게 전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항하는 이들은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의 내면 속에 거부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퍼져 나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듣기 싫습니다. 그의 외모부터 그의 목소리, 그의 습성 모든 것에서 그를 싫어할 이유를 찾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증오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들은 반항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자는 길 잃은 양을 찾도록 파견되었기 때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을 달게 받아들이는 이들만 구원하기로 작정했다면 구원 사업은 이미 예전에 종료되었어야 하고 더는 퍼져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은 길 잃은 양(늑대가 아닙니다)을 찾아오는 것입니다. 반항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늑대의 유혹을 받아서 아직 혼란스러움 중에 반항하는 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께 돌아오면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가장 자신을 낮춘 이가 가장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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