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뜻
인간이 내면으로 싸우는 이유는 결국 한 가지로 종합됩니다. 나의 뜻을 그분의 뜻, 즉 하느님의 뜻에 우선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세밀한 부분들을 분별할 필요가 있지만 그래도 큰 줄기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첫 조상 때부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다가 큰 화를 당했고 그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뜻을 중심에 놓고 싶다는 것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나의 올바를 위치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사랑’을 수확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강제된 복종은 있을 수 있어도 강제된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엉뚱하게 쓰여지기를 바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규율을 마련하셨지요.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어둠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어둠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을 뿐입니다. 즉 보석함과 쓰레기통을 만들어 두셨을 뿐이지요. 하느님은 합당한 틀을 만드신 것 뿐입니다. 그리고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보석이 되면 보석함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가 되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헌데 적지 않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쓰레기로 살다가 보석함으로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법칙들을 개발해 냅니다. 즉, 자신은 보석이 아니고 쓰레기인데 보석처럼 겉꾸며서 보석함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가 힘있는 자들에 의해 강탈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마저 좌우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듭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생각하신다고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뜻을 가르치는 이들이지요. 이들은 하느님의 뜻은 사실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이들이니까요.
여러분의 내면을 솔직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분이 원하는 것’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찰을 더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많은 곳에서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뜻’이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철저히 따른다면서 ‘자신의 뜻’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자들이지요. 이런 영악하고 고집스러운 자들은 그들을 위한 합당한 자리가 마련될 것입니다.
인간이 내면으로 싸우는 이유는 결국 한 가지로 종합됩니다. 나의 뜻을 그분의 뜻, 즉 하느님의 뜻에 우선시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세밀한 부분들을 분별할 필요가 있지만 그래도 큰 줄기가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첫 조상 때부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하다가 큰 화를 당했고 그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뜻을 중심에 놓고 싶다는 것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나의 올바를 위치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사랑’을 수확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강제된 복종은 있을 수 있어도 강제된 사랑이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엉뚱하게 쓰여지기를 바라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규율을 마련하셨지요.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어둠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어둠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았을 뿐입니다. 즉 보석함과 쓰레기통을 만들어 두셨을 뿐이지요. 하느님은 합당한 틀을 만드신 것 뿐입니다. 그리고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보석이 되면 보석함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우리가 스스로 쓰레기가 되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헌데 적지 않은 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쓰레기로 살다가 보석함으로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법칙들을 개발해 냅니다. 즉, 자신은 보석이 아니고 쓰레기인데 보석처럼 겉꾸며서 보석함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가 힘있는 자들에 의해 강탈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이들이 하느님의 뜻마저 좌우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듭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생각하신다고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뜻을 가르치는 이들이지요. 이들은 하느님의 뜻은 사실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이들이니까요.
여러분의 내면을 솔직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분이 원하는 것’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성찰을 더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많은 곳에서 ‘하느님의 뜻’보다는 ‘나의 뜻’이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철저히 따른다면서 ‘자신의 뜻’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자들이지요. 이런 영악하고 고집스러운 자들은 그들을 위한 합당한 자리가 마련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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