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는 굉장히 활동적인 인물입니다. 여동생 마리아가 주님 발치에 앉아 있는 동안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중을 들었고 또 동생이 죽어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도 주님을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인물이지요.
주님은 이런 마르타를 사랑하셨습니다. 마리아 때문에 역정이 났을 때에 주님은 마르타의 이름을 연거푸 두 번 부르시면서 마르타를 애정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도 주님은 그녀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마르타는 기꺼이 신앙 고백을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마치 통통 튀는 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면서 세상에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일에 열심히 동참하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잘 듣는 것입니다.
마르타가 주님이 말씀하실 때마저도 듣지 않고 제 성질을 부렸다면,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 마르타가 제 성질 대로만 행동 하려고 했더라면 아마 마르타는 그저 평범한 여인네로 복음 사가에 의해 기록될 여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마르타가 그렇게나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활동가였고 그분의 명에 따라서 자신의 방향을 수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의 아픔을 씻어내겠다며 실제로 활동하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하나 있으니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마르타를 사랑하셨습니다. 마리아 때문에 역정이 났을 때에 주님은 마르타의 이름을 연거푸 두 번 부르시면서 마르타를 애정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도 주님은 그녀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마르타는 기꺼이 신앙 고백을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마치 통통 튀는 공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면서 세상에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일에 열심히 동참하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 하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잘 듣는 것입니다.
마르타가 주님이 말씀하실 때마저도 듣지 않고 제 성질을 부렸다면,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 마르타가 제 성질 대로만 행동 하려고 했더라면 아마 마르타는 그저 평범한 여인네로 복음 사가에 의해 기록될 여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마르타가 그렇게나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활동가였고 그분의 명에 따라서 자신의 방향을 수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의 아픔을 씻어내겠다며 실제로 활동하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하나 있으니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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