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받게 될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습니다. 알 수 없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기에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았고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잃게 되었습니다.
보물을 알아본 사람은 돌아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그 보물을 삽니다. 그 보물의 가치가 다른 이에게 알려져 다른 이가 더 많은 재산을 들고 와 보물을 차지하기 전에 그 보물을 사는 것이 낫겠지요. 하지만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돌아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100만원짜리 핸드백보다 못한 시대입니다.
보여주지 않아 보지 못하고, 보려 하지 않으니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맑은 마음이라는 것은 두 눈으로 관측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와 머무르면서 직접 살면서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하셨지요.
어딜 가서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참으로 화려해져서 가서 보아도 껍데기만 보입니다. 가서 보니 높은 건물이 있고, 화려한 제대가 있고, 너무나도 바쁘신 신부님이 계시니 보아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신앙학교는 보이는데 ‘신앙’은 잘 보이지 않고, 신심단체는 보이는데 ‘신심’은 상실되어가고 있으니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 교회를 와도 진리를 체득하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보려하지 않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보려고 찾기 시작하면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미사가 늘 거행되고, 우리가 배운 학식을 통해서 책을 찾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원한다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많지요. 하지만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있고, 흥미와 재미를 주는 것에 살짝 중독되어 있어서 진득하니 마음을 모아서 성찰하고 묵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훈련의 기간은 필요한 법인데 그러기에는 세상의 탐스런 것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아서 큰일입니다.
보려고 조금 나섰다가 ‘경쟁’에 돌입하기도 합니다. 분명 시작은 좋았는데 남들과 경쟁이 붙어서 남들보다 더 ‘우월하게’ 보려는 욕구에 스스로 사로잡혀 버리고 말지요. 정말 배움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위한 배움이 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배움이 되어 버리니 첫 술을 잘 뜨고는 남은 밥을 버리는 꼴입니다. 수도원이나 신학교에 아름다운 첫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누가 더 기타를 잘 치나, 누가 더 노래를 잘하나, 누가 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나를 두고 은근히 서로 질투하고 다투곤 하지요.
보여주지도, 보려 하지도 못하는 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려는 이가 보고 보여주게 됩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잃어버리게 되지요. 자신이 무엇을 잃는지도 모른채 말입니다.
보물을 알아본 사람은 돌아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그 보물을 삽니다. 그 보물의 가치가 다른 이에게 알려져 다른 이가 더 많은 재산을 들고 와 보물을 차지하기 전에 그 보물을 사는 것이 낫겠지요. 하지만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리고 돌아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100만원짜리 핸드백보다 못한 시대입니다.
보여주지 않아 보지 못하고, 보려 하지 않으니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맑은 마음이라는 것은 두 눈으로 관측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와 머무르면서 직접 살면서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과 그분의 은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와서 보라’고 하셨지요.
어딜 가서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참으로 화려해져서 가서 보아도 껍데기만 보입니다. 가서 보니 높은 건물이 있고, 화려한 제대가 있고, 너무나도 바쁘신 신부님이 계시니 보아도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신앙학교는 보이는데 ‘신앙’은 잘 보이지 않고, 신심단체는 보이는데 ‘신심’은 상실되어가고 있으니 사람들은 진리를 찾아 교회를 와도 진리를 체득하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보려하지 않는 사람도 문제입니다. 보려고 찾기 시작하면 충분히 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미사가 늘 거행되고, 우리가 배운 학식을 통해서 책을 찾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원한다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도 많지요. 하지만 우리는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있고, 흥미와 재미를 주는 것에 살짝 중독되어 있어서 진득하니 마음을 모아서 성찰하고 묵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훈련의 기간은 필요한 법인데 그러기에는 세상의 탐스런 것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아서 큰일입니다.
보려고 조금 나섰다가 ‘경쟁’에 돌입하기도 합니다. 분명 시작은 좋았는데 남들과 경쟁이 붙어서 남들보다 더 ‘우월하게’ 보려는 욕구에 스스로 사로잡혀 버리고 말지요. 정말 배움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위한 배움이 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배움이 되어 버리니 첫 술을 잘 뜨고는 남은 밥을 버리는 꼴입니다. 수도원이나 신학교에 아름다운 첫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서로 질투하고 경쟁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누가 더 기타를 잘 치나, 누가 더 노래를 잘하나, 누가 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나를 두고 은근히 서로 질투하고 다투곤 하지요.
보여주지도, 보려 하지도 못하는 이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은총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려는 이가 보고 보여주게 됩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잃어버리게 되지요. 자신이 무엇을 잃는지도 모른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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