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함이라는 것은 ‘꼼꼼함’과는 다른 성격의 가치입니다. 일을 흠없이 처리하는 것은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고, 핵심을 잃지 않는 것은 완전함입니다.
가난한 이에게 콩을 나눠주는데 콩이 하나라도 흘리지 않게 애를 쓰는 것은 꼼꼼함을 챙기는 것이고, 가난한 이가 부족하지 않게 콩을 나눠주려 노력하는 것은 완전함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결국 완전함이라는 것은 ‘하느님’에게로 나아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야말로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흠없이 일처리를 하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함을 손상하게 한다면 의미없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전례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자주 발견됩니다. 이거냐 저거냐를 두고 복사들끼리 싸우고, 또 사제는 사제대로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전례를 정성스레 준비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잘 하려는 사람이 있고, 정반대로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일과 상관없이 머무르는 사람도 잘 추스려서 함께 가도록 하는 것이 완전함이라고 한다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완벽’을 이루도록 닥달하고,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기회도 주지 않고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것은 ‘완벽주의’에 해당합니다.
만일 하느님이 완벽주의자였다면, 우리는 죄를 짓는 그 즉시 즉결처분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분이시지 완벽주의자는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죄인도 기다려주시는 분이시지요. 때로는 우리가 하느님보다 더 하느님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가차없이 심판하고 응징하려고 들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5,48)
가난한 이에게 콩을 나눠주는데 콩이 하나라도 흘리지 않게 애를 쓰는 것은 꼼꼼함을 챙기는 것이고, 가난한 이가 부족하지 않게 콩을 나눠주려 노력하는 것은 완전함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결국 완전함이라는 것은 ‘하느님’에게로 나아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야말로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흠없이 일처리를 하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함을 손상하게 한다면 의미없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전례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자주 발견됩니다. 이거냐 저거냐를 두고 복사들끼리 싸우고, 또 사제는 사제대로 완벽함을 추구하면서 전례를 정성스레 준비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잘 하려는 사람이 있고, 정반대로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일과 상관없이 머무르는 사람도 잘 추스려서 함께 가도록 하는 것이 완전함이라고 한다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완벽’을 이루도록 닥달하고, 일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기회도 주지 않고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것은 ‘완벽주의’에 해당합니다.
만일 하느님이 완벽주의자였다면, 우리는 죄를 짓는 그 즉시 즉결처분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분이시지 완벽주의자는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죄인도 기다려주시는 분이시지요. 때로는 우리가 하느님보다 더 하느님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가차없이 심판하고 응징하려고 들지요.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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