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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말씀의 사명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이사 55,10-11)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떨어질 대상을 물색합니다. 비가 지붕 위에 고이는 법은 없습니다. 비는 떨어져 내려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가장 메마른 곳에 스며듭니다. 만일 지붕 위에 솜뭉치를 올려 둔다면 당연히 그 솜뭉치에도 비는 스며들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비처럼 내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 떨어진 그 목적을 완수하러 갑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이에게 떨어지지만 그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이, 가장 목마른 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스며들어 사명을 이룹니다.

수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신앙 안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하는 이는 굉장히 드뭅니다.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낮춤’과 ‘목마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의가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원의를 다 채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갈구하는 사람이 결국 하느님이 뿌려주시는 모든 은총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진 자는 더 가져 부유하게 되고 가지지 못한 이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말의 숨은 뜻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갈구하지 않는 이는 가지고 있던 은총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하느님은 많은 것을 미리 주셨는데 사람들은 그것들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욕구에만 집착한 나머지 가지고 있던 것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건강한 몸을 지녔는데 돈을 더 벌어들여 안락한 생활을 누려 보겠다고 악착같이 애쓰다가 결국 돈은 벌지만 건강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우가 좋은 본보기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본보기를 들면 여러가지 항변이 뿜어져 나올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런 경우에는?’이라고 하면서 온갖 예시들을 들먹이면서 지금 제가 하는 소리가 소위 ‘배부른 소리’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말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가난한 홀몸 할아버지에게서도 신앙을 발견하였고 행복한 미소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부하는 자들에게 은총이 억지로 밀고 들어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은 은총이 아니라 강제일 뿐입니다. 억지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사랑’이 배제됩니다. 은총은 비처럼 내립니다. 하지만 오직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이에게만 주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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