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마르 8,17-18)
완고한 마음은 사람의 눈과 귀를 막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눈 앞의 사물을 봅니다. 눈 앞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주변의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장님도 귀머거리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은 ‘마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굳어져 버릴 때에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할 때에 우리는 그가 하는 어리석은 말을 듣지 못하고, 그가 드러내는 오류를 눈감아 버립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가 하는 진리의 말을 듣지 못하고, 그가 드러내는 다른 선한 부분을 보지 못합니다.
결혼하기 전 그렇게나 아름다워보이던 상대였건만 결혼 후에 비로소 보고 듣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콩깍지가 씌여 마음이 굳어 있는 동안에는 상대가 올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실컷 욕하던 사람이 실제로는 정말 고귀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로늦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굳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신앙생활을 한다는 적지 않은 이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저 ‘누룩’에만 관심이 있어 마음이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룩은 부풀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누룩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왕년에 말이지….”
“우리 회장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저런 일들을 하시고….”
“이 공동체는 내가 일으켜 세웠는데….”
“사실은 내가 그 주교님을 개인적으로 좀 아는데….”
이러한 것들이 모두 누룩입니다.
완고한 마음은 사람의 눈과 귀를 막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눈 앞의 사물을 봅니다. 눈 앞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주변의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장님도 귀머거리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은 ‘마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굳어져 버릴 때에 그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할 때에 우리는 그가 하는 어리석은 말을 듣지 못하고, 그가 드러내는 오류를 눈감아 버립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가 하는 진리의 말을 듣지 못하고, 그가 드러내는 다른 선한 부분을 보지 못합니다.
결혼하기 전 그렇게나 아름다워보이던 상대였건만 결혼 후에 비로소 보고 듣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콩깍지가 씌여 마음이 굳어 있는 동안에는 상대가 올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실컷 욕하던 사람이 실제로는 정말 고귀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로늦게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굳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어쩌면 신앙생활을 한다는 적지 않은 이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그저 ‘누룩’에만 관심이 있어 마음이 굳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룩은 부풀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 누룩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될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왕년에 말이지….”
“우리 회장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저런 일들을 하시고….”
“이 공동체는 내가 일으켜 세웠는데….”
“사실은 내가 그 주교님을 개인적으로 좀 아는데….”
이러한 것들이 모두 누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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