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람이 완벽하게 말할 수 있게 될 때에 말을 시작한다면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의 한 마디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완벽해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완성에 다다르는 존재입니다.
신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순간 완벽한 신앙을 선사받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완성에 이르러 가는 것입니다.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시련과 비난과 조롱은 신앙생활의 동반자와도 같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의 신앙도 우리 안에서 점차로 자리잡아 가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표현은 없습니다. 당신이 준비가 될 때 쯤이면 어쩌면 당신의 생이 마감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부든 수녀든 교리교사든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성해 나아가는 것이지요.
출발하지도 않은 길을 진로수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든 영적 조언은 영적 생활을 시작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법입니다. 발을 똥물에 푹 담그고서 언젠가 여기서 나가면 발을 깨끗하게 씻고 양말을 신고 신을 신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단 똥물에서 발을 꺼내고 나서 발을 씻든, 털어내든 뭐든 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는 길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길에서 저 길로, 저 길에서 이 길로 넘나들기도 합니다. 어느 길에 있든지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중요한 법이지요.
신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순간 완벽한 신앙을 선사받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완성에 이르러 가는 것입니다.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시련과 비난과 조롱은 신앙생활의 동반자와도 같습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의 신앙도 우리 안에서 점차로 자리잡아 가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표현은 없습니다. 당신이 준비가 될 때 쯤이면 어쩌면 당신의 생이 마감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부든 수녀든 교리교사든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성해 나아가는 것이지요.
출발하지도 않은 길을 진로수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든 영적 조언은 영적 생활을 시작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법입니다. 발을 똥물에 푹 담그고서 언젠가 여기서 나가면 발을 깨끗하게 씻고 양말을 신고 신을 신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단 똥물에서 발을 꺼내고 나서 발을 씻든, 털어내든 뭐든 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완성되는 길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길에서 저 길로, 저 길에서 이 길로 넘나들기도 합니다. 어느 길에 있든지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중요한 법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