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터전을 마련하시고 그 안을 생물들로 채우십니다. 저마다의 자리에 합당한 것들로 가득 가득 채우시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릴’ 임무를 맡기면서 인간을 그 가운데 세우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배(someter)’와 ‘다스림(dominar)’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배자’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지배와 다스림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수탈과 억압’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권위는 생생하게 살아있지만 사랑으로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지배와 다스림이고, 권위만 내세우고 전혀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수탈과 억압입니다.
인간은 태초에 창조물 앞에서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창조물은 그 권위에 복종했습니다. 인간은 말 한 마디로 동물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깃들었고 인간은 태초의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창조물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인간을 공격합니다.
나아가 자연물도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홍수가 없던 곳이 홍수가 나고, 가뭄이 없던 곳이 가뭄이 나는 이유는 단순히 자연의 변덕이 아닙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낸 재앙이 상당수 작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자정 능력을 넘어서서 오염을 시키고 있으며 결국 그 결과물을 고스란히 입게 될 것입니다. 부자들이 아무리 재물을 모은들 공기가 썩고 물이 썩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먹을 것을 거두어 들이고 거두어 들인 것은 썩어가며, 동물들은 개체수가 점점 적어져 멸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 리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우리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는 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활동으로 니네베는 재앙을 면했고, 1,2차 세계 대전 동안 성모님의 발현으로 인류는 죄악에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느님은 다른 예언자, 다른 섭리로 인류의 방향을 돌리고자 노력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배(someter)’와 ‘다스림(dominar)’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지배자’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지배와 다스림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수탈과 억압’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권위는 생생하게 살아있지만 사랑으로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지배와 다스림이고, 권위만 내세우고 전혀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수탈과 억압입니다.
인간은 태초에 창조물 앞에서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창조물은 그 권위에 복종했습니다. 인간은 말 한 마디로 동물들을 복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깃들었고 인간은 태초의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창조물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인간을 공격합니다.
나아가 자연물도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홍수가 없던 곳이 홍수가 나고, 가뭄이 없던 곳이 가뭄이 나는 이유는 단순히 자연의 변덕이 아닙니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낸 재앙이 상당수 작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자정 능력을 넘어서서 오염을 시키고 있으며 결국 그 결과물을 고스란히 입게 될 것입니다. 부자들이 아무리 재물을 모은들 공기가 썩고 물이 썩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먹을 것을 거두어 들이고 거두어 들인 것은 썩어가며, 동물들은 개체수가 점점 적어져 멸종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일 리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우리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는 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나의 활동으로 니네베는 재앙을 면했고, 1,2차 세계 대전 동안 성모님의 발현으로 인류는 죄악에서 돌아설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느님은 다른 예언자, 다른 섭리로 인류의 방향을 돌리고자 노력하시리라 믿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