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요한 6,65-67)
예수님의 가르침은 아무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12명만 뽑은 것이 아니었지요. 수많은 제자들 가운데에 12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도전적이었고 그것을 따르기 위해서는 의지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가르침의 완성에 이를 즈음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신앙’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산을 오르는데 초반에는 얕은 구렁을 넘다가 점차적으로 경사가 높아지고 그렇게 겨우 정상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아래가 보이지 않는 벼랑 앞에 세워두고는 믿고 그리로 뛰어 내리라는 것과도 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다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갑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이성’이라는 것을 쓰겠지요. 말씀을 듣고 분별하고 해석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들은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의지’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서히 성장해 가겠지요. 헌데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전적인 신뢰’ 즉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막혀 버리고 맙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결심을 의미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요.
수많은 이들이 이 ‘신앙’ 앞에서 좌절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추구하던 하느님이 아니라며 그분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이 초자연의 신비를 뛰어넘을 용기가 생겨나지 않은 것이지요.
오늘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이렇게 묻는 이유는 떠나지 말라는 부탁임과 동시에 우리의 자유에 맡긴다는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당신을 따라오라고 강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강요된 신앙은 절대로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결정을 내립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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