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는 우리 편에 속하지 않았는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이들을 두고 괜찮으니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이 상황을 조금만 더 묵상해 들어가면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같은 편에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같은 유대인들의 반대를 가장 심하게 받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찾아왔고 따뜻하게 대하였고 그분에게서 은총을 갈구하고 그것을 얻어 갔습니다. 정작 같은 민족들에게서 증오와 반대를 받고, 가장 신뢰하고 지지를 얻어도 성치 않은 고향 마을에서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유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저 교회의 인적 자원을 증가시키는 일이 아니라 영의 세력과 맞서는 일입니다. 즉 더러운 영들에 대항해서 복음이 전해집니다. 선한 영혼들은 복음을 기뻐할 테니까요. 그래서 악한 영들, 더러운 영들은 이 복음에 반대합니다. 선한 이들이 무언가에 반대할 때에는 정당한 방법을 씁니다. 하지만 더러운 영들은 그 더럽고 사악한 내면을 그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쓰는 방법은 치졸하고 더러우며 음험해서 선한 이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뿐더러 그런 방법이 있다는 데에 경악할 방법을 쓰곤 합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선한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한 이들은 기껏해야 정의에 항변하고 자신의 권리나 수호하는 것이 전부니까요. 누군가를 공격할 의지도 없고 오히려 적지 않은 경우에 용서를 베풉니다.
하지만 오늘 1독서에 등장하는 지혜는 바로 그런 선한 이들의 내면에 깃들어 그들에게 길을 알려줍니다. 오늘 집회서에 등장하는 지혜의 길안내는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혜는 처음에 그와 더불어 가시밭길을 걷고
그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몰고 오리라.
지혜는 그를 신뢰할 때까지 자신의 규율로 그를 단련시키고
자신의 바른 규범으로 그를 시험하리라.
그러고 나서 지혜는 곧 돌아와 그를 즐겁게 하고 자신의 비밀을 보여 주리라.
그가 탈선하면 지혜는 그를 버리고 그를 파멸의 손아귀에 넘기리라.
(집회 4,17-19)
지혜는 그가 사랑하는 이를 힘든 경로를 통해서 훈련을 시키고 단련시켜서 마침내 그를 성장시킵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그가 자신의 수고의 보람을 맛보게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바로 그 지혜의 여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의 손을 잡고 그가 인도하는 여정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지혜는 우리를 빛으로, 선으로, 하느님께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는 이에게 평화 넘치고, 그들 앞에는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나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