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에게 용돈을 받아서 행복한 부모도 있지만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내면이 성실한 이로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부모도 있습니다. 사제가 같이 고급 스포츠를 즐겨 주고 고급 양주를 마셔줘서 뿌듯해하는 신자도 있지만 사제가 열과 성을 다해 말씀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신앙을 설파하는 데에서 기쁨을 누리는 신자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건 사람들이 변덕스럽고 악에 쉽게 물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는 행복과 불행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시면서 당신의 모습을 선물해 주셨고 우리 안에도 사실 그 행복과 불행의 기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동물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능 안에서 행복해 하듯이, 즉 맛있는 음식을 먹고 편안해지면 행복해지듯이 인간도 자신의 고유한 기능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도 한편으로는 동물이라 같은 행복의 기준을 가집니다. 하지만 인간은 거기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초월성'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고 그 영혼의 본성 안에서도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우리를 하느님에게 초대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어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의 행복을 말하고 하늘에서 받을 상에 대해 언급합니다. 사실 행복은 간단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고 있는 이들은 이 현세에서 박해를 받고 부족해 보여도 결국 '행복해질' 사람들이고 그 행복은 하느님의 본성에 따른 영원한 행복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이 지상에서의 행복, 결국 사라지고 말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불행하다고 선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상의 행복을 칭송하겠지만 그것은 바로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 나오는 부분과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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