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주님의 봉헌을 기념하는 중에 그 아름다운 모습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아 보이는 한 구절을 마주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실 모든 성인들은 하느님 앞에 봉헌된 삶을 살았지만 우리는 성인들 가운데 가장 으뜸이신 분으로 성모님을 꼽습니다. 성모님은 가장 최고의 봉헌의 삶을 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모님의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하셨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그 실마리가 간간이 등장합니다.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할까요? 과연 영혼을 누가 찌를 수 있을까요? 영혼을 찌를 수 있는 것은 영적인 도구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불신앙과 하느님을 향한 증오를 의미합니다. 마치 피부가 두꺼운 사람은 자극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아기 피부처럼 섬세한 피부를 가진 사람에게는 미미한 자극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처럼 성모님의 마음은 더욱 순수하고 맑아서 하느님을 향한 사람들의 경솔함을 더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당신의 아들인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증오와 원한은 더욱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성모님은 다른 사람들은 거의 느끼지 않는 그 고통을 마음 한 켠에 늘 품고 사시면서 그것을 이겨내셔야 했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지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맑고 깨끗했기 때문에 이 고통은 칼에 꿰찔리는 고통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당을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하는 것이 기성 신자들에게도 별로 크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자녀들에게 신앙을 딱히 요구하지도 않고 스스로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신앙을 지탱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모님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자녀들로 인해서 영혼이 칼에 찔리는 아픔을 견디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