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마르 3,14-15)
예수님이 사도들을 뽑은 이유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목록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지내게’ - 당신과 함께 머무르며 필요한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름 착하게 생활해 오긴 했지만 ‘빛’이 부족했습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의 빛이 전적으로 부족했지요. 사람은 누구나 그러합니다. 제 나름의 윤리 도덕적인 기준으로 착하게 살아갈 수는 있지만 하느님의 선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모터가 필요하고 그것은 바로 말씀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시 진리를 배워 습득할 필요가 있고 또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부딪혀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 단순히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고 나중에 천국에서 보자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땅끝까지 당신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제자들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상 밖으로 뻗어 나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안주하는’ 신앙을 꿈꾸곤 합니다. 그저 주일미사나 열심히 나오고 별다른 걱정 없이 마음의 평화나 찾는 그런 고요한 신앙을 바라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신앙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러한 신앙의 모습을 절대로 원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증거할 자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성령으로 가득 채워야 하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 제자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해야 할 사명은 다른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즉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으니 회개하고 이 기쁜 소식을 믿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선포해야 했습니다. 가서 누가 더 옳은지 토론을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었지요.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으면 거기 머무르면서 말씀을 전하고 그렇지 않다면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한다, 선포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말마디를 현란하게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것은 삶과 더불은 증언으로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이지요. 즉 자신이 믿는 것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의미는 참으로 방대하면서도 분명합니다. 이는 마치 사랑에 대해서 수많은 소설책이 있는 것과 같지만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하고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 복음을 전하는 데 걸림돌은 힘에 부치는 일이거나 무언가를 습득하는 난관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마귀’들입니다. 즉 어둠의 영을 지닌 자들과 그것을 조종하는 악한 영들이지요.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은 다른 그 어떤 권한보다도 이 권한이 가장 필요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 권한은 실제로 작동합니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권한을 이용해서 어둠의 영들을 쫓아내기는 커녕 도리어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는 이 권한을 이미 부여 받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엉뚱한 능력들, 즉 이적을 행하거나 치유를 행하는 등등의 능력을 청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미 받은 이 능력을 이용해서 열심히 복음화에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고해성사와 미사 성제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어둠을 쫓아내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제는 이미 충분히 그 권리를 가지고 있고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몇 번을 반복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말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