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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사람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1요한 5,5-8)

물은 외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우리의 육신을 의미하지요. 피는 생명을 부여하는 내적인 면모들을 의미합니다. 동물도 이 피의 영역을 지니고 있지요. 바로 지성과 감정의 영역을 말합니다. 이 물과 피가 하나 되어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를 이루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대로부터 ‘피’는 한 동물의 ‘생명’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피가 다 빠지고 나면 생명력도 함께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성령’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하느님에게서 나온 거룩한 영, 그분을 알게 하고 그분을 뒤따르게 도와주는 거룩한 영입니다. 바로 이 영이 있어야 비로소 인간은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이 없이는 인간은 금수와 다를 바가 없으며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금수보다도 못하게 됩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영은 자유의 공간이며 그 자유를 선으로 이끌지 못하면 반대로 악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고 무언가에 집착하여 살게 되지요. 우리는 선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만 선을 반사해 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가 선의 빛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에게서 선이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물의 성실성, 즉 구체적인 삶의 성실성으로 당신을 증언하시고, 또 피의 성실성, 그 내면의 선하심과 좋은 것들로 자신을 증언하시며, 마지막으로 성령의 증언, 하느님의 거룩한 영의 증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진실성을 알아보고 그분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분을 믿을 때에 우리는 비로소 진실한 선에 대해서 배워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세상의 속임수를 파악해내고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해서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모든 속는 자들은 자기 스스로는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지요. 그러나 바로 그 교만이 자신을 도리어 어둠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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