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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 소개 좀 부탁 드립니다.
-네, 저는 볼리비아에서 일하는 마진우 요셉 신부라고 합니다.

소개가 간단하네요.
-그런 셈이죠.

뭐 더 소개하실 게 없나요?
-딱히 하고픈 마음이 없네요. 줄줄이 이력을 소개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네 알겠습니다. 볼리비아에서 어떤 일을 하시죠?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뭐, 별다를 건 없습니다. 신부가 하는 일이지요. 미사 드리고, 성사 집전하고, 장례도 가고 교회 내의 모임도 이끌고 본당 관리도 하고,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뭔가 한국 신부님들이 하는 일과는 다른 게 있지 않을까요?
-다르다면... 먼 시골 공소에 가는 거,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조금은 낮다는 거, 그리고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등등이 있겠네요. 그 가운데 제일 힘든 걸 꼽으라면 제일 마지막,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어려움이겠지요.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봐요.
-네, 사제가 하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그들과 대화가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말을 못하니 참 답답하지요. 5개월 정도의 어학코스를 초반에 받기는 하지만, 그 짧은 기간으로 하나의 언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스터는 둘째치고 하다못해 자신의 의사라도 제대로 표현했으면 싶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아요. 결국 살아가면서 부딪혀 가면서 조금씩 배워 나가는거죠. 지금 4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안들리는 대화가 부지기수예요.

문화의 차이는 어떤거죠?
-사람 사는게 다 똑같긴 하죠. 하지만 간간이 부딪히게 되는 문화의 차이도 적지 않은 것 같아요. 저 개인적으로 음식은 뭐든 주는대로 잘 먹어서 큰 문제는 없지만, 음식 문화도 굉장히 달라요. 한국은 정말 다양한 조리법이 있잖아요. 하지만 여기는 굽고, 끓이고, 튀기고... 뭐 이 정도가 전부예요. 전통 조리법이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다양하진 않죠. 그리고 기본 짜고 달아요. 더운 지방이라 그런가봐요. 장례 문화도 달라서 죽은 사람 때문에 사제들을 찾는 경우가 수도 없어요. 정작 살아 있을 때는 보이지도 않다가 죽고 나서야 '구원'해 달라고 찾아오는 이 문화는 아직도 좀 받아들이기 힘이 드네요. 축복 문화도 그래요. 미사때면 제대 앞에 성상들이 주욱~ 늘어서 있어요. 이동네 사람들의 성상 사랑은 좀 유별나죠. 성모님도 이상하게 생겼어요.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한 것이 언뜻 보면 '링'에서 나오는 처녀귀신같이 생겼는데, 그게 성모님상이래요. 아, 처음 와서 '인사하는 법' 때문에도 참 많이 힘들었어요. 손을 맞잡고 볼을 맞대면서 인사를 하는데, 그건 또 여자에게만 그래야되고, 남자에게는 악수를 하고 등을 두드려야 되요. 또 별로 안 친한 사람은 손만 잡구요. 이런 애매한 구분들이 가끔가다 섞여서 남자에게 볼을 들이밀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거 재밌네요. 다른 재미난 에피소드는 없나요?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딱히 생각나는 건 없네요.

선교생활 하시면서 힘든 점은 어떤 건가요?
-앞서 이야기한 것들이 힘들었지만,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해소가 되는 것들이죠. 사실 가장 힘든 점이라면,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구나 똑같겠지만 이 부분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환경은 적응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상대는 다르게 생각하고 또 미묘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감정이 상하고, 또 화해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가장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결국 선교생활이라고 특별히 힘들다기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힘든 것들이죠. 누구나 똑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앙'이죠. 사실 선교사제의 삶, 선교 이전에 사제의 삶 자체가 '신앙'에 바탕하는 거잖아요. 이 '신앙'이 튼튼할 때는 뭐든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무미건조해지는 때가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바닥이 무너지는 기분이랄까요? 그럴 땐 정말 갈피를 못 잡겠어요. '신앙' 하나, '하느님을 향한 사랑'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던질 마음으로 시작한 삶인데, 그 '신앙'이 사라지는 기분... 그야말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죠. 하지만, 그런 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다행히 오래 지속되지는 않고 또 금새 회복하고는 힘내서 하던 일들을 하죠.

네, 한국에서 많이들 도와 주시는가요?
-하하하, 네 많이 도와주세요. 헌데 내가 도움 받으리라고 기대했던 곳에선 도움이 없고 오히려 전혀 엉뚱한 곳에서 도움이 오기 일쑤예요. 전에 머물던 본당이나 동기 신부님들은 떠날 때 말고는 거의 연락이 없구요. 물론 저도 따로 연락을 하진 않았어요. 세상이 좋아져서 페이스북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거기에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시더군요. 가끔가다 오는 소포도 정말 기뻐요. 근데, 우리 라면, 과자, 이런거 없을 줄 알고 보내시는데, 사실 라면이랑 과자는 구할 수 있어요. 한국 슈퍼가 하나 있어서 새우깡, 신라면 이런 거 구할 수 있어요. 소주도 구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안 들어온다더군요. 뭐 소주 없으면 맥주 마시죠 뭐. 라면이랑 과자 보내면 유통기한 간당간당하게 도착하기가 일쑤예요. 배로 도착하는데 기본 3개월 정도 걸리거든요. 다른 특별운송으로 보내면 배보다 배꼽이 커져요. 지난번엔 책 2권 찾는데 10만원 가까이 달래서 그냥 안받는다고 하고 말았어요. 뭐 작은 소포 같은 거 보내시고 싶으신 분들은, 책이나 아기자기한 학용품들, 성물들 이런 것들 모으셔서 특별 운송 이런 거 말고 일반 소포로 보내시면 좋겠어요. 음식물이나 이런 것들은 잘 상하고 필요한 건 여기서 구할 수 있으니까요. 일반 소포로 보내면 규격 크기로 된 책은 알아서 항공우편으로 오고 좀 크기가 큰 건 배편으로 도착해요.

보다 큰 도움은 어떤 게 필요하신가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11개 공동체 중에 유일하게 공소 건물이 없는 공소가 하나 있는데 지금 공소건물 작은 걸 지으려고 생각 중이예요. 예산은 1000만원 정도 잡았어요. 큰 돈이죠? 하하하. 40명 정도 들어갈 공소 건물에 작은 방을 하나 계획했어요. 있는 사람은 술집가서 하룻밤 몇백씩 쓴다던데, 농담이겠죠. 한 번 술자리에 공소 벽 하나가 날라가잖아요. 야튼 이 계획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비가 와서 땅이 진흙탕이 되어서 자재도 못 넣고 있어요.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하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으로 시급한 건 차량이죠. 우리 선교사들은 차 없으면 하는 일의 반 이상이 확 줄어들어요. 그래서 은근히 차가 없었으면 하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다 고쳐 주시네요. 에이...ㅋ 트럭 하나가 너무 낡아서 좀 바꿨으면 하는데 선교사 차량을 지원한다는 미바회에 메일로 연락을 넣어도 소식이 없네요. 다 연줄인가봐요. 누구는 잘도 타서 쓰던데, 내가 아직 인지도가 없는건가. 이것도 때가 되면 다 생길 거라고 믿어요. 아직 그 때가 안된 거겠죠.

감사합니다 오늘 시간 함께 해 주셔서. 오늘 인터뷰는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지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저야말로 감사드리죠. 좋은 하루 되세요.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자신'과 인터뷰하다.
슬슬 미쳐가는구나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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