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적당히 없는 게 좋다.
그래야 가끔 있을 때 좋고,
뭐가 생길 때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다.
지나치게 많이 들고 있으면,
감사할 줄도 모르고, 더 나은 무언가가 없으면 늘 불만이게 된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런 이유로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성경 모임 가서,
사탕 하나씩 쥐어주면 좋아한다.
그 와중에 하나 더 주면 완전 좋아한다.
그 통에 나도 사탕을 선물 받을때면 그 가치를 안다.
나에게 건네는 막대사탕 하나가 이 사람들에게 얼마만한 가치를 지닌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걸 몰랐더라면
이 동네 아이들이 나에게 먹다가 내미는 사탕의 그 아름답고도 소중한 가치를 두고
'뭐야 이 더러운 건?'하면서 내던져 버렸을 거다.
물론 아직도 그 침이 줄줄 흐르는 걸 쉽사리 받아먹을만치 비위가 좋진 않지만,
지금은 '와아, 고마워~ 근데 신부님은 지금 사탕이 크게 먹고싶지 않네'하고 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다.
인터넷이 얼마나 빠른 줄 몰랐으며
사회의 편의시설이 얼마나 잘 정비된 줄 몰랐었다.
어느 시골을 가도 도로가 다 정비되어 있고,
첩첩산중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휴대폰은 다 터진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고,
음식 종류도 육해공 없는 게 없다.
한국은 기본 전반적으로 부유하고 시작하는 조건들이 비슷하기에,
있는 자들이 있다고 뻐기는 만큼
그만큼 가난한 자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크겠지.
여기도 부자가 있긴 하지만,
부자가 얼마나 부유하게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저 이웃들을 바라보며 다들 그렇게 고만고만하게 사는 줄 안다.
가진 게 많다고 콧대를 세우지 말자.
'많이 가짐'은 기실 제 능력도 아니다.
"에이, 저는 공부 완전 열심히 해서 좋은 연봉의 좋은 직장 얻어서 돈 번 건데요?"
그 시작의 기초를 잘 살펴보시라.
정말 아무것도 없는 0%의 상태에서 시작했는가?
모르긴 해도 이런 저런 기초들이 존재할 것이다.
당신의 노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진정 가난한 이웃들, 소외된 이웃들이 왜 가난한지를 바라볼 줄 모른다면,
당신은 그 '부'를 맡을 자격이 없다.
모럴 해저드다...
많이 가졌다는 건, 많은 책임을 부여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것이 돈이든, 지식이든, 재주든...
당신이 가진 건 다른 한 몸의 다른 지체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 몸 가운데 머리가 자기만 지식이 있다고 모든 양분을 자기에게 끌어들이면,
다른 지체들이 서서히 말라죽어가고
결국엔 머리도 죽어 버리고 만다.
이런 공동체의 개념이 없으면,
자기 죽는 줄도 모르고 남을 벼랑에 밀어 넣게된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적당히 없는 게 낫다.
그래야 많은 것에 '감사'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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