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비가 왜 오는지를 설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닥에 흙이 왜 있는지를 설명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비가 내리고 바닥에 흙이 있는 건 어느 동네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여행 가이드는 듣는 이들이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 말이 많아지게 되고 다른 곳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그곳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해야 하며 때로는 이야기를 과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이 감탄의 대상입니다. 우유니의 소금 호텔의 기원과 역사보다는 우유니 소금 평원 그 자체를 형성하신 하느님의 손길이 놀라울 따름이고, 마추픽추의 정교한 돌들보다는 마추픽추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 자체를 이루신 하느님을 더 찬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인간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사람의 몸 자체는 하나의 위대한 작품입니다. 우리 인간은 내면이 정말 조화롭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하나라도 작동을 올바로 하지 않으면 당장에 불편을 느끼게 되지요. 헌데 그 몸이 우리의 수명이 유지되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그 기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놀라움은 육체보다도 ‘영혼’에 존재합니다. 인간은 ‘영원’을 상속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유한한 피조물이 영원을 함께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을 상속받을 수 있는 영혼이라는 존재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기능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감정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하루를 다양하게 꾸며내곤 합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면이 차분하고 끈기가 있는 영혼은 그 힘든 하루를 잘 이겨낼 수 있으며, 반대로 아무리 몸이 편안하고 안락하다 할지라도 내면이 무너진 영혼에게는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런 스스로의 존재와 그 존재를 이루신 하느님에게 찬미를 드리고 감사하지 못하는 영혼은 세상의 그 어떤 유적지를 가더라도 씁쓸한 맛을 느낄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씁쓸함은 시간을 더해 갈수록 늘어갈 뿐입니다. 이미 볼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고 경탄할 것이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천진한 아이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에 경탄을 하고 기뻐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길을 걷다가 작은 풀꽃 하나를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올바로 배우는 사람,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지하는 사람은 온 세상과 온 시간이 경탄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들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는 좀처럼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새로이 감사하는 경우도 굉장히 드뭅니다. 그래서 일상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일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막연한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종교적 상징이고 우두머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들은 하다못해 자연을 통해서라도 창조주의 손길을 깨닫기를 바라지만 씁쓸해진 그들의 마음은 모든 것을 잿빛으로 만들어 버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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