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머리’의 역할을 담당하십니다. 세상에 머리가 없는 몸은 없습니다. 머리가 떨어지면 그 즉시 생명이 중단되게 마련입니다. 교회의 일원은 반드시 머리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은 머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예수님이 왼쪽으로 가자고 하면 왼쪽으로 가야 하고,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면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받아들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고 그러지 말라는 것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전체의 몸을 생각하고 가장 나은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른손에서 피가 철철나는데 왼손이 머리더러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 손가락을 봐요. 아직 반지가 없잖아요. 그러니 머리님, 어서 움직여서 저에게 반지를 끼워 주세요.”라고 한다면 머리로서는 상당히 골치가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게는 모두가 당신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고통 당하는 자녀들이 안타까워 죽을 지경입니다. 헌데 이미 생활환경이 월등히 나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곤 합니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가 고민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녁이 없어서 고민인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머리라면 과연 어느 지체를 더 소중히 여길까요?
각 지체와 머리는 같은 ‘신경’과 같은 ‘핏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느끼는 것이 같고 나누는 영양분이 같습니다. 머리와 온 몸은 같은 성령을 통해서 모두 함께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사랑을 나누어 먹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제도가 영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성령은 하느님에게 의지를 봉헌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요. 하지만 이 기도라는 것을 외적인 행위 만으로 축소 시켜서도 안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그 어떤 사랑도 없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드러나게 보란 듯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골방에서 문을 닫고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과시하는 그 교만으로 은총과 성령은 사라져 버리고 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핏줄과 신경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 몸 속에 숨어 있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요. 따라서 기도하는 이들도 자신을 과장하여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사제로 선발되고, 누군가가 주교로 선발되면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직분에 맡겨진 은총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게 됩니다. 한 사제가 거룩하면 그 사제를 통해서 은총을 갈구하는 모든 이들이 그 거룩함을 받아마시게 되고, 한 주교가 거룩하면 그 주교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이들이 그 거룩함을 받아마실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모든 지체를 위한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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