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루카 3,16)
볼리비아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습니다. 인구의 80%에 육박하는 이들이 가톨릭 신자라고 자신을 내세웁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성당으로 데려와서 세례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는 첫영성체 나이에 이르기까지 성당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들이 받는 세례는 물로 받는 세례입니다. 그 물은 외적인 표지가 되고 사람들에게 교회의 일부가 되었다는 외적인 확신을 줍니다. 물로 씻김으로 인해서 죄를 사함 받았다고 느끼게 해 주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러나 외적인 것은 외적인 것에 그칠 뿐입니다. 외적인 것이 곧 내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는가에 따라서 그 외적인 것이 내적인 것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편지에 하트를 그려 보낸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시큰둥하면 그 외적인 표지의 하트는 내적으로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글씨 하나만 적어서 보내더라도 감격하고 감동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외적인 세례를 내적인 간절한 준비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외적으로 우리에게 확실한 표지를 주는 거룩한 성사를 내적인 준비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러합니다. 모든 성사들과 축복들, 모든 거룩한 표지의 행위들은 그 이면에 내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그 본래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세례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로만 세례를 받으면 그 외적인 표지를 간직하고 그 증명서를 받아서 장롱 속에 넣어두면 그만입니다. 그리고는 저 살고 싶은대로 살면 그만이지요. 왜냐하면 그 증명서는 나의 삶과 하등의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내적인 세례는 한 인간을 변모시킵니다. 낡은 인간을 버리고 새 인간이 되게 도와줍니다. 내적인 세례를 받은 이들은 기쁨에 가득하게 되고 영원한 희망에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선하고 의롭고 자비롭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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