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길들고 나면 아무리 좋은 것이든, 아무리 나쁜 것이든 그 첫인상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에 ‘신앙’이라는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좋아 보이던 신앙이 시간이 흐르고 같은 활동이 반복되면서 무미건조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식의 본질이 단순히 겉모양과 그 첫 맛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의 본질은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고 활동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되는 역할도 담당하지요. 마찬가지로 신앙도 그 처음의 아름다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시련 안에서의 인내와 꺼지지 않는 희망을 통해서 완성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 ‘무미건조’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가오는 시련들을 견뎌낼 힘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에게 더 의탁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고 본격적인 마음가짐을 다지면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십자가가 다가오기 때문에 지루해 하거나 심심해 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점점 황폐해지는 것은 단순히 주변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내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제자리에 서서 내가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데 지겹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같은 행위를 수십년간 반복해서 하는데 당연히 지겨울 수 밖에요. 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의 내면이 침체되어 있고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으면 아무리 외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 어떤 느낌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우리의 내면이 늘 새로움을 느낀다면 그 같은 활동은 늘 다이나믹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영적 목마름과 황폐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신앙에 있어서 모든 문제는 하나로 묶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사랑할까요? 아니면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신앙 안에서 기쁨을 느끼는 이유는 하느님과의 만남과 그분과 나누는 사랑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거듭 말하지만 같은 활동을 반복하는데 지겹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하느님과의 만남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면 아무리 좋아 보이는 활동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길들여지고 지겨워지게 됩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요. 하지만 신앙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그분과의 만남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그 신앙은 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진정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은 그냥 숨만 쉬어도 행복할 뿐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모든 영적 목마름과 황폐함은 바로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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